살인까지 부른 ‘벽간 소음’… “옆집 쿵쾅 소리에 잠 못자고 괴로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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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쪽방촌-오피스텔 등 시설… 옆집 말소리-코 고는 소리까지 들려
이웃간 다툼에 범죄로 이어지기도
층간소음은 ‘49㏈ 이하’로 규제… “실질적 법적 규제 만들어야” 지적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취재팀이 옆집의 벽간 소음을 측정한 결과, 드럼 세탁기 작동음과 비슷한 수준인 52.3dB(데시벨)이 측정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취재팀이 옆집의 벽간 소음을 측정한 결과, 드럼 세탁기 작동음과 비슷한 수준인 52.3dB(데시벨)이 측정됐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옆집 말소리부터 코 고는 소리까지 너무 잘 들려요. 하루이틀이 아니니 옆집 주민과 다툴 때도 많죠.”

15일 오후 1시경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이모 씨(81)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 동아일보 기자가 직접 다섯 가구를 섭외해 소음 측정기로 옆집 생활 소음을 측정해 보니 최대 55dB(데시벨)이 나왔다. 이는 드럼세탁기 작동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틀 전 이 쪽방촌에선 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60대 남성이 이웃을 살해하려 한 일이 있었다.

생활 소음이 벽 너머 옆집까지 전달되는 ‘벽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는 없어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층간 소음처럼 시공 단계부터 벽간 소음을 규제할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살인까지 부른 벽간 소음, 한 해 민원 200여 건

고시원과 쪽방촌, 오피스텔 등 이웃과 벽을 맞댄 채 밀집 생활을 하는 이들이 주로 벽간 소음에 노출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성모 씨(27)는 두 달째 벽 너머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성 씨는 “늦은 밤 소음이 들릴 땐 잠을 못 자 멜라토닌 등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든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빌라에 거주하는 김모 씨(34)는 “오전 6시마다 옆집에서 ‘쿵쾅’대는 소리에 깬다”며 “직접 찾아가면 혹시라도 보복당할까 봐 무서워 관리실에만 문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갈등이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13일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는 한 60대 남성이 ‘시끄럽다’는 이유로 크게 싸웠던 같은 층 70대 남성을 살해하려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12월 대구 북구의 한 원룸에서는 옆집에 살던 20대 여성과 소음 문제로 다투던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검거됐다. 2023년 2월 경기 수원시에선 한 20대 남성이 벽간 소음 문제로 다툰 이웃 주민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수했다.

한국환경공단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벽간 소음 신고는 지난해 228건이 접수됐다. 2021년엔 267건, 2022년 255건, 2023년 252건으로 해마다 200건을 웃도는 추세다.

● 고시원 등 225만 가구인데 벽간 소음 규제 없어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고시원, 쪽방촌, 오피스텔 등 ‘주택 이외의 거처’는 225만742가구로, 전체 주택 2272만8163가구의 약 9.9%에 이른다. 한국인 10명 중 1명꼴로 벽간 소음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시공 단계에서 벽간 소음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의 2는 각 층간 바닥은 충격에 의한 소음인 충격음이 49dB 이하로 건설하게끔 돼 있다. 하지만 벽간 충격음에 대한 기준은 없다.

경계벽의 경우 두께와 소재 기준만 있을 뿐이다. 공동주택의 경계벽은 철근콘크리트조일 경우 두께가 15cm 이상, 무근콘크리트조 또는 석조일 경우 두께가 20cm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설계 단계에서의 방침일 뿐 준공 후 실제 현장 충격음을 확인하는 내용은 없다.

전문가들은 벽간 소음에 대한 인식을 높임과 동시에 실질적인 법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 소장은 “현재로선 집을 지을 때 벽간 충격음을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이 아예 없는 상황”이라며 “오래전부터 벽간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생기고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건축물은 콘크리트의 강도 중심으로 설계가 이루어졌으나 충격음 등을 막기 위한 구조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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