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소 갈취에서 도박사이트-코인자금 세탁으로 진화
격투 선수나 ‘짱’ 출신 가입시켜 숙소서 공동생활
“이탈땐 손가락 절단” “대화 메시지 삭제” 등 지침
경찰, 거점 15곳 덮친 뒤 39명 잇따라 검거해 소탕
‘진성파’ 조직원들이 몸에 새긴 문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제공)
서울에 합숙소를 차리고 복싱·유도 선수 출신 조직원을 모아 도박 사이트 등을 운영해 온 폭력조직(조폭) ‘진성파’가 경찰에 일망타진됐다. 서울에서 조직범죄 형태의 조폭이 검거된 건 2004년 ‘연합새마을파’ 이후 21년 만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조폭이 가상화폐(코인) 자금 세탁과 대포유심 유통 등 온라인 지하경제를 발판 삼아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단체로 흉기 훈련을 벌이고, 위계와 강령을 따르는 등 운영 방식은 전형적인 영화 속 조폭을 연상케 했다.
● “이탈자는 손가락 절단”… 합숙소서 흉기 연습도
17일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진성파 조직원 39명을 폭력행위처벌법상 범죄집단 구성 등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중 두목 역할을 한 행동대장 40대 A 씨 등 9명은 구속했고, 해외에 체류하는 조직원 2명은 수배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명확한 위계와 서열이 있는 조폭으로, 자체 강령을 통해 조직을 운영했다. 강령은 “이탈자는 손가락을 자른다” “선배의 말을 이행하지 않으면‘ 빠따(매)’를 맞는다” 등 복종을 강요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사업(범죄) 관련 대화를 나눈 후에는 텔레그램 자동삭제 기능을 활용한다” 등 수사를 피하기 위한 행동 요령도 포함했다.
이들은 배우 조인성 주연의 영화 ‘비열한 거리’에 나올법한 합숙소를 운영하며 조직원을 관리했다. 복싱·유도 등 투기 종목 선수나 고등학교 ‘짱(싸움꾼)’ 출신 조직원을 모아 금천구의 숙소에서 공동생활을 시킨 것. 조직원 경조사 시 검은 양복을 입은 채 한 줄로 도열하는 이른바 ‘병풍’을 하거나 생수통을 세워놓고 칼로 찌르는 등 흉기 사용법을 연습하기도 했다. 흉기와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 ‘비상 타격대’를 두고 무력 충돌에 대비했다. 수사 대상에 오른 조직원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거나 도피자금을 제공해 감시망을 피했다. 선배의 구타를 견디다 못한 막내급 조직원이 도망가는 일도 벌어졌다.
● 코인 세탁-온라인 도박으로 돈벌이
진성파의 등장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2000년대 초반에 명맥이 끊긴 것으로 보였던 조폭이 온라인 도박 등 지하경제를 업고 다시 세를 불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명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조폭이 등장했지만, 또래 친구들로 모인 점조직 형태에 그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상 조직범죄 형태의 조폭에 해당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진성파는 1980년대 참 진(眞), 별 성(星)자를 따서 학교폭력 서클로 출발했다. 1990년대에는 유흥업소 갈취로, 2000년대에는 도박장 및 보도방 운영으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바다이야기 사태 등으로 단속이 심해지고 신규 조직원 유입이 끊기면서 조직이 와해됐다.
이들이 부활하기 시작한 건 2018년경, A 씨를 비롯한 1980년대생 조직원들이 온라인을 무대로 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으면서였다. 진성파는 코인을 통해 수십억 원의 자금을 세탁하거나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 유심을 공급하며 세를 불렸다. 이들이 운영한 도박 사이트의 규모는 1200억 원대였다. 전체 범죄수익 규모는 수사 중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해외까지 발을 뻗을 정도로 (수익처를) 확장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2023년 10월 한 특수강도 사건을 수사하던 중 진성파의 합숙소를 발견했다. 이후 1년여 간의 수사를 통해 금천구와 경기 광명시 등에서 활동하는 조직 실체를 입증했다. 올 3월엔 거점 15곳을 동시에 덮쳐 조직원 10명을 체포했다. 이후 조직원을 차례로 검거해 최근 소탕에 성공했다.
다만 도박 사이트 등 지하경제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어 조직범죄의 온상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조사결과 불법 온라인 도박 신고는 2019년 1만3064건에서 2023년 3만9082건으로 약 3배로 증가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지하경제를 통한 자금을 세탁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범죄를 막는) 핵심”이라며 “경찰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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