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료진 “급여까지 오래 걸려 치료 포기까지”
호주, 신약 블리나투모맙 공고요법 35일만에 급여
국내는 아직 급여 안 돼 환자 치료 기회가 제한적
혈액암, 진행빠르고 치명적…급여소요기간 줄여야
ⓒ뉴시스
국내의 건강보험급여 지연이 혈액암 치료의 걸림돌이란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해외에선 일반 약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보험급여에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호주는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ALL) 치료 면역항암제 ‘블리나투모맙’(제품명 블린사이토)의 공고요법에 대해 허가 후 단 35일만에 건강보험 급여 등재를 결정했다. 이는 호주에서 의약품 허가 후 PBS(국민건강보험) 등재까지 평균 약 647일이 소요되는 것과 비교할 때, 약 18배 빠른 이례적인 결정이다.
혈액암처럼 질환의 진행이 빠르고 치명적인 중증 질환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신속한 급여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은 전체 암 발생률의 0.4% 미만으로 드문 질환이지만, 빠르게 진행되며 전신을 침범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반면 국내에선 이 약이 지난 2월 공고요법 적응증을 추가 인정받아 1차 유도요법 후 관해에 도달한 환자에게 사용 가능해졌으나, 아직 보험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실제 국내 환자의 치료 기회는 제한적이다.
혈액암 치료 전반에서 환자들은 급여 지연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혈액암협회 등이 지난 5월 공개한 환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응답자 119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비급여 상태인 신약 때문에 항암 치료를 고민하거나 치료 결정을 미룬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87%는 해외에서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항암 혁신 신약이 국내에서는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치료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대한혈액학회도 혈액암 신약 급여 지연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학회는 지난 3월 열린 ‘2025 대한혈액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건강보험 급여 지연이 혈액암 치료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이주영 의원(개혁신당)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최근 3년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에 상정된 혈액암 치료제 13개 중, 최초 심의에서 급여 기준이 설정된 사례는 단 2건에 불과했다. 국감에서 이 의원은 해당 기간 동안 혈액암 치료제가 첫 급여 기준 심사 신청에서 탈락하는 비율이 85%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혈액암 신약 허가 후에도 ‘약값 장벽’에 가로막힌 실정이다. 급여 적용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환자는 전액을 자비로 부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대한혈액학회 성인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연구회 이원식 위원장(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혈액종양내과)은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은 1차 치료 후 성인 환자의 절반가량이 재발하고, 재발 시 치료 예후도 불량해 재발한 환자의 완치율은 10% 미만, 전체 생존기간은 1년 미만으로 떨어질 만큼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의 생존 기회를 높이기 위해선 재발 이전 초기 치료 단계에서 효과적인 치료 옵션을 사용해 재발 위험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 신약이 재발 위험 감소에 명확한 효과를 보였다면 이에 대한 신속한 급여 결정은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도 최근 신약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제도 개편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등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며 심사평가원 단계에선 암질환심의위원회 구성을 전문학회 추천 위주로 재편하면서 전문성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성인 ALL처럼 환자 수가 적은 치료제일 경우 급여 도입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현실”이라며 “블리나투모맙 사례처럼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유효성이 입증되고, 치료 단계에서의 투여기회를 놓치면 환자의 생존 가능성이 영향을 받는 경우라면 해외 사례처럼 급여 결정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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