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종합무역센터 지하 4층. 수열 에너지 공급시설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삐 움직였다. 물의 열 에너지를 변환하는 ‘히트펌프’도 보였다. 친환경 에너지로 최근 각광받는 수열 에너지로 무역센터 냉난방을 하게 됐다.
수온은 여름에 대기보다 낮고 겨울에는 반대로 대기보다 높다. 히트펌프 등을 활용하면 온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주차장 천장에 설치된 광역수도관을 통해 들어온 물은 히트펌프 등을 거쳐 냉난방에 쓸 수 있는 에너지로 바뀐다. 전기 에너지 대신 한강에서 물을 끌어와 에너지를 뽑고 냉난방에 활용하는 것이다.
● 계절별 수온차 이용해 냉난방에 활용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날 무역센터에서 수열에너지 공급시설 착공식을 열었다. 올해 말 시설이 완공되면 하루 평균 25만 명이 찾는 무역센터에 수열에너지를 활용한 냉난방이 시작된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무역센터에 수열 에너지를 공급하면 약 7000대 분량의 에어컨을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인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강 주변 중심상업지구에서는 수열을 활용한 이른바 ‘RE100 상업지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냉난방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삼성동 일대 중심상업지구에 한강 수열을 활용해 에너지 소비방식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뜻한다.
기존 광역수도관을 이용하기 때문에 추가 수로 공사가 필요하지 않다. 에너지 사용처와 공급원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고 에너지 불균형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에어컨을 가동할 때는 전기가 소모되고 실외기 열기로 인한 열섬현상이 나타나지만, 수열에너지는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다. 이 때문에 수열을 활용하는 방식은 재생에너지 기반 인공지능(AI) 인프라 조성에 적합한 에너지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4년에는 국내 상업시설 중 최초로 롯데월드타워에서 3000RT 규모 수열 에너지를 보급했다. RT는 단위시간 당 냉동 능력을 의미하는 단위로, 액체 상태의 0도 물 1t을 고체 상태인 0도 얼음으로 24시간 동안 유지하는데 필요한 열량을 뜻한다.
2030년까지 전국에 1GW 규모를 공급해 원전 1기를 대체하는 게 수자원공사 목표다. 전국 광역상수도관을 이용해 개발할 수 있는 수열 에너지의 잠재량은 10GW다. 2030년까지 계획된 1GW를 공급할 경우 매년 50만 가구의 전력 사용량 수준인 450GWh를 대체할 수 있다.
롯데월드타워는 수열 에너지 공급시설을 도입한 뒤 연간 에너지 사용량 36%를 줄였다. 2029년 잠실종합운동장, 2030년 현대GBC와 영동복합환승센터에도 수열 에너지 공급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강남구와 송파구 일대 5곳에 총 1만8660RT 규모의 수열 에너지가 공급될 예정”이라며 “약 1만9000대의 에어컨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 美-유럽에선 80년대부터 수열 에너지 활용
국내 수열 에너지 활용은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아직 더디다. 공사가 지난 11년간 개발한 수열 에너지는 잠재량의 1.5%인 4만3119RT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1980년대부터 수열에너지를 도시 에너지원으로 적극 활용해 왔다. 미국 코넬대는 인근 카유가호에서 연간 2만RT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사용한다. 프랑스 파리는 센강에서 4만2000RT 규모의 수열 에너지를, 캐나다 에너지 기업 엔웨이브는 온타리오호 하천수에서 7만5000RT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 캠페인 ‘RE100 이니셔티브’는 올해 5월 발간한 연차보고서에서 한국을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장 어려운 시장’으로 꼽았다. 탄소중립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열에너지 확산 등 대체 에너지 보급이 필요하다. 수열 에너지는 특히 냉방에 잘 활용할 수 있어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은 RE100 산단 조성에도 적합한 에너지원이다.
윤석대 수자원공사 사장은 “수열 에너지 보급 범위를 단일 건물에서 산업단지와 도시 단위로 점차 확대해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 계획”이라며 “2030년까지 전국에 원전 1기 규모의 수열 에너지를 공급해 ‘RE100 산단’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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