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서 3호선 옥수역 최고 39.3도·2호선 성수역 최고 38.1도
전문가 “온열질환 발생 우려…고객대기실 마련하고 노동자 쉬어야”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 3번 출구 앞이 퇴근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2024.07.12 뉴시스
“땀도 많이 나고 더위 때문에 불편해요. 냉방 대책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30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만난 고명(28·남)씨. 연신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던 고씨는 “그래도 지하철을 타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오전 9시 성수역 승강장에 설치된 이동식 에어컨은 설정온도가 24도로 돼 있었지만 기준온도(현재온도)는 34도로 나타났다. 지하철 승강장엔 냉방 장치가 설치되지 않아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들이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이용객도 역사 노동자도 더위에 지쳐
이날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시내에 폭염이 계속되면서 지하철 승강장 내부온도가 높아 이용객 불편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수역 승강장에 선 승객 대다수는 땀을 흘리면서 부채질하거나 휴대용 선풍기로 열기를 식히는 모습이었다. 일부 승객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로 땀을 닦으면서 냉방열차가 진입하기를 기다렸다.
열차가 역사에 진입해 출입문을 열면 일시적으로 온기가 물러갔지만 객차가 떠나면 이내 뜨거운 공기가 승강장을 가득 메웠다.
특히 오랜 시간을 역사에 머무르는 관계자와 직원 등은 더위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됐다.
역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김미란씨는 “정말 너무나 덥다. 그런데도 여기는 선을 연결하기 힘들고 전기가 부족해 에어컨 설치를 못 한다고 한다”며 “여기는 아무리 낮아도 37도는 되고 38도까지도 올라간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선풍기를 틀면서 버티고 있다”면서 “가게 안은 훨씬 온도가 높다. 그래서 너무 더우면 가끔 바깥에 나가 있다가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2호선 강남역에서 청소노동을 하는 조모씨는 “오전 6시10분까지 출근하는데 냉방 되기 전이라서 오전에도 덥다”라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오후 5~7시에도 상당히 덥다”고 귀띔했다.
조씨는 “지하상가에서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LED 광고판에서 나오는 열이 엄청나다”고 언급했다.
서울 성동구 3호선 옥수역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김모씨는 “더위 때문에 엄청 힘들다. 승강장에 올라가는 동시에 땀을 뚝뚝 흘린다. 너무 더워서 머리가 자주 아프다”라며 “에어컨이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 고객대기실 외에는 에어컨이 잘 설치돼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일부 역사 승강장온도 40도 육박…옥수역 39.3도·성수역 38.1도
공공기관 에너지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 제14조(적정실내온도 준수 등)에 따르면 공항, 철도·지하철역사, 버스터미널 등 대중교통 시설은 자체위원회 결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실내온도가 29도가 되면 냉방설비를 가동하고 27도가 되면 이를 정지하도록 기준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실제 승강장온도는 40도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향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지난 25일 서울교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지하철 역사의 온도 설정 기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2~24일 측정된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역사 온도는 최고 39.3도로 나타났다.
옥수역의 역사온도는 지난 24일 오후 3시 39.3도까지 치솟은 뒤 오후 6시에도 38.1도를 유지한 것으로 측정됐다. 같은 날 지하철 2호선 성수역도 오후 3시 39도를 기록한 뒤 오후 6시에는 38.3도를 기록했다.
전날 오후 3시에는 3호선 옥수역(38.1도), 2호선 성수역(37.1도), 4호선 창동역(33.5도) 등 역사온도도 실내온도 기준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수, 옥수역을 포함한 일부 서울지하철 역사(지하역사 26역·지상역사 25역)에는 아예 냉방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교통공사는 비(非)냉방 지상 역사 20역을 대상으로 냉방보조기기 60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또 지상역에 동행쉼터(고객대기실)를 9역 14개소 설치·운영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전문가 “역사 전체 냉방하기보다는 노동자 휴식 보장해야”
승강장에 설치된 안전문(스크린도어)이 역사에 열기를 더하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냉방을 하지 않는 선로에서 방출된 뜨거운 열기가 안전문을 통해 유입되면서 승강장 냉방 효율이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과거 안전문이 없을 때는 열차가 지나면 함께 환기가 이뤄졌다. 바깥 공기가 열차랑 내부로 들어오면 공기 순환이 돼서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게 된다”라며 “안전문이 설치되면서부터는 철로에 있는 공기만 계속 순환이 되고 안전문 안쪽 대기 공간에서는 공기 순환이 어렵게 됐다. 그러다 보니 더 쉽게 더워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승강장온도가 과도하게 높은 채로 유지되면 이용객뿐 아니라 장시간 근무하는 역무원·청소노동자 등의 건강과 근무 환경도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역사를 완벽하게 냉방하는 것은 좋은 해법은 아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돼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다”면서 “역사 노동자를 중간중간 쉬게 하고, 휴게 장소에는 에어컨 꼭 설치하고 물도 구비해두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도 “지금은 37~38도에 육박하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날씨에서는 온열질환자가 급격히 늘 수 있다”며 “더군다나 지상역이면서 이용객 많은 성수·신도림역은 인구밀집도도 높고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노약자 등을 중심으로 위험할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냉방이 되는)고객대기실을 만들어서 기다릴 수 있도록 하거나 싱가포르처럼 천장형 선풍기(실링팬)를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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