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토킹 신고를 하고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수사당국이 휴대전화로 보내는 집착성 문자나 전화 등 ‘전조 증상’을 사전에 감지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 등 관계성 범죄는 강력범죄로 이어지기 전 뚜렷한 징후가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울산 북구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스토킹 피해로 신변 보호를 받고 있던 20대 여성이 직장 앞에서 전 연인이었던 30대 남성의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중태에 빠졌다. 이에 앞서 ‘휴대전화 스토킹’이 먼저 시작됐다. 가해자는 7월 초 피해자가 “헤어지자”고 하자, 엿새 동안 전화 168통, 문자메시지 400여 통을 보냈다.
지난달 26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노인보호센터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도 유사하다. 가해자인 60대 남성은 직장 동료였던 50대 여성에게 ‘밥해달라’는 등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다가 스토킹 경고장을 받았다. 같은 달 8일엔 전 연인인 60대 여성을 스토킹해 접근금지 처분을 받자 분노해 폭행한 가해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해당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23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전화 88통, 영상통화 9통, 문자메시지 395통을 시도하며 피해자를 괴롭혔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문자 등을 보내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는 등 물리적 행위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아, 간과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스토킹 신고 이력 등이 있는 가해자의 경우 통신 추적을 통해 범죄를 사전에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원치 않는 연락의 지속은 전조 증상이 분명하다”며 “스토킹 재범 이력이 있는 가해자를 대상으로 통신 기록을 조회해 추적하는 방안도 잠정조치로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스토킹 위험성을 평가하고 있다. 영국은 경찰과 국민보건서비스(NHS)가 함께 운영하는 ‘고착 위협 평가 센터’(FTAC)에서 정신건강 전문가가 스토킹 초기 위협을 평가한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해 위험도를 평가하는 셈이다. 미국은 경찰, 임상심리사 등이 SNS 접근 기록, 정신질환 유무 등을 통해 스토킹 동기를 파악하고 ‘낮음-중간-높음’ 3단계로 위험군을 분류해 스토킹 재범 가능성 예측에 활용한다.
한편 관계성 범죄가 반복되자 경찰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와 협의해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지속성과 반복성’ 개념을 명확히 규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피해자가 상대방에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스토킹을 계속하면 횟수에 상관없이 지속성과 반복성을 인정하는 게 골자다. 또 경찰에 신고된 이후 스토킹 행위를 반복하면 ‘보복성 스토킹’으로 규정해 가중처벌하는 법안도 신설을 추진 중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