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주식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다며 가짜 사이트로 투자자를 속여 94억 원을 가로챈 일당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범죄단체조직 혐의 등으로 가짜 비상장주식 거래 사이트 제작자와 유통 브로커, 피싱 조직원 등 46명을 검거해 이 중 20명을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이들은 실제 비상장 주식거래 사이트와 유사하게 정교하게 위조한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 “상장이 확실한 주식을 저가에 매수할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피해자는 총 182명, 피해액은 94억 원에 달한다.
사이트 개발자 A씨(29)는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비상장 주식 거래소, 해외선물 거래소, 허위 쇼핑몰 등 다양한 사이트를 위조해 64개를 개발했다. 이 중 19개를 브로커 B씨(32)와 C씨(24)에게 넘기고 사이트 유지·보수를 하며 월 4000만 원의 수익을 챙겼다. 브로커들은 이 사이트를 국내외 14개 피싱 조직에 판매하고 월 3000만 원 상당을 벌었다.
이들이 제작한 가짜 사이트는 실제 거래소의 디자인은 물론 실시간 주가지수까지 그대로 모방했다. 심지어 ‘가짜 사이트 주의’를 알리는 진짜 사이트의 경고 문구까지 따라붙였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도메인을 차단하면 수시로 주소를 바꿔 범행을 이어갔다.
A씨는 사기 등 13건의 수배를 받고 도피 중이었으며, 외제차를 수시로 바꿔 타며 강원 원주 등지를 전전하다 지난해 11월 검거됐다.
가짜 사이트를 구입한 피싱 조직은 서울·경기 일대 공실 상가에 단기 콜센터를 차리고, 유튜브 주식 리딩방 등에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범행을 벌였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상장이 유력한 비상장 주식을 미리 사면 상장일에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유인해 수차례 돈을 송금받고, 상장일이 되면 연락을 끊는 수법을 썼다. 주로 공모주 일정에 따라 17개 종목을 바꿔가며 사기를 반복했다.
조직은 내부적으로 팀장-과장-대리 등 직책을 나눠 운영했고, 체육대회 등 단합 활동을 하며 결속을 다졌다. 대부분은 군 제대 후 취업을 준비 중이던 20대 중반 남성이었다. 피해자와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포토샵과 파워포인트로 주민등록증, 공문서, 기업 보도자료, 주주명부 등도 위조했다.
사이트 관리자가 구속되자 일부 조직은 챗GPT 등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활용해 ‘주식 보유 확인 페이지’를 만들어 실제 주식이 없는 피해자 계정에도 주식이 입고된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피해자 중 92%가 50대 이상으로, 특히 60대 이상 비율이 71%에 달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 디지털 취약한 중장년층이 집중적으로 타깃이 됐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김모 씨(80)는 한 조직으로부터 6억 원, 또 다른 조직으로부터 100만 원을 추가로 잃었다. 그는 “비상장 주식 2600주를 사면 상장 후 1300주를 무상으로 준다는 말에 속았다”며 “범인들이 ‘어머니, 어머니’ 하며 친근하게 굴었다”고 토로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식적이지 않은 투자나 자문을 맹신할 경우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며 “비상장 주식은 허위 문서나 과장된 정보가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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