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80주년을 기념해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마련된 대형 태극기 전시 앞에서 가족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광복절을 엿새 앞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발을 딛자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던 옛 태극기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가로 5m, 세로 4m가량 크기의 대형 태극기들은 빨랫줄에 걸린 옷처럼 공중에 매달려 바람을 타고 힘차게 펄럭였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빛바랜 색감과 얼룩은 박물관에 보관된 실물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가족,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나부끼는 대형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아이들은 잔디마당 난간에 빼곡하게 설치된 바람개비 모양 종이 태극기에 입김을 불어 돌리거나 손끝으로 톡톡 튕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평소 교과서 속에만 있던 역사가 생활 속 체험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광복절 80주년을 맞아 노들섬은 2025개의 태극기로 뒤덮인 역사 기념 공간으로 변신했다. 1880년대 구한말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 시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140여 년간 변화해 온 태극기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 대형 태극기로 보는 근현대사
서울문화재단은 이날부터 17일까지 ‘독립, 너의 미래를 위해서였다’를 주제로 광복절 기념행사를 연다. 제목은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딸을 키우며 쓴 일기 속 문장에서 따왔다.
노들섬 2층 야외 광장에는 1883∼1890년 제작돼 현존하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태극기 목판(1919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1923년)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1945년)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1950년) 등 16점의 대형 태극기가 시대순으로 걸렸다. 태극기 아래 QR코드를 인식하면 해당 태극기에 담긴 역사 정보를 확인하고 성우의 해설 음성도 들을 수 있다.
잔디마당에는 가로 40m, 세로 27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 위에 바람개비 태극기 1000개를 설치한 미술 작품이 전시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1층 실내 전시관에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전 선서 장면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한 태극기, 6월 민주항쟁 당시 거리 시위 장면, 2002 한일 월드컵 붉은 악마 응원단의 모습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 시대순으로 전시됐다.
또 다른 전시관에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여성 독립운동가 80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함께 전시를 찾은 김현명 씨(43·서울 동작구)는 “아이와 산책하고 사진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까지 할 수 있어 뜻깊다”고 말했다.
재단은 행사 기간 매일 오후 5시부터 8시 30분까지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국악과 밴드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시민 예술가 공연을 선보인다. 일부 공연은 시민이 직접 무대에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돼 관람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다.
● 서울광장에서 ‘태극기 언덕’ 체험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은 16일까지 태극기 바람개비 300개를 품은 ‘태극기 언덕’으로 꾸며진다. 가로 45m, 높이 6m 규모의 언덕에 오르면 서울도서관 외벽에 걸린 안중근 열사의 ‘단지동맹 혈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광장 한쪽에서는 배우들이 시민과 팀을 이뤄 연기하는 참여형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공방 체험 부스에서는 태극기 바람개비와 광복군 레고 만들기, 해치 그리기 등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독립운동 퀴즈, SNS 인증샷 이벤트 등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