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비 있었으면 막을 사고”… 근로자 5명 열흘새 감전-추락사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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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장갑-안전로프 등 없이 작업
양식장 청소하던 외국인 2명 감전
전기설비-건축공사 현장서 추락도
올해 3월까지 137명 산재로 숨져… “안전장구 지급-착용 단속 강화를”

전남 고흥, 전북 완주, 경기 파주에서 불과 열흘 사이 노동자 5명이 숨졌다. 감전, 추락 등 사고 유형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절연장갑, 구명조끼, 안전대 같은 기초 안전장비가 없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기본 보호구만 갖췄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며 제도 보완과 현장 단속 강화를 촉구했다.

● 감전·추락 잇달아… “안전장비만 있었어도”

10일 오후 4시 14분 전남 고흥군 두원면의 한 새우 양식장에서 베트남 국적 A 씨(33)와 태국 국적 B 씨(29)가 숨졌다. 1만1000m² 규모 양식장에서 새우 출하를 마친 뒤 바닥을 청소하던 중이었다. 바닷물이 빠지지 않은 구역에서 A 씨가 깊이 3.5m의 수중펌프장에 들어가 슬러지를 제거하던 중 감전돼 쓰러졌고, B 씨가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사인은 감전에 의한 심정지로 추정된다. 당시 이들은 절연장갑, 구명조끼 등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허리까지 오는 고무장화만 착용했다. 양식장 사장 김모 씨(75)는 “작업 전 전기를 차단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착각했을 가능성과 설비 결함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있다.

전기 작업에서 안전장구 미착용이 치명적 결과를 부른 사고가 또 있다. 1일에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도로시설 개량 공사 현장에서 60대 근로자가 변압시설 전선을 해체하다 감전돼 7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그는 안전모만 쓴 채 절연장갑과 절연장화, 안전로프 등은 없이 작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기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5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의 한 신축 건물 공사 현장에서도 60대 일용직 남성이 사다리 위에서 에어컨 지지대를 설치하다 약 3m 아래로 추락했다. 안전모와 안전대 없이 작업하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닷새 만에 숨졌다. 해당 사업장은 5인 미만이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보호장비 미착용으로 인한 사고는 추락과 감전에 그치지 않았다. 4일 제주 제주시 도두동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작업자 4명이 유해가스에 노출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달 28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상수도 누수 공사 현장에서는 70대 근로자 2명이 질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송기마스크 등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 전문가 “안전장구 지급, 현장 단속 강화해야”

고용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산업재해 사망자는 137명, 지난해는 589명으로 하루 평균 1.6명이 숨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보호구 착용 및 지급 등의 규정이 있고 이를 어길 시 최대 5년의 징역 또는 50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서 빠져 제재가 약하고, 단기·불법체류 노동자가 많은 업종은 안전교육이 부실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대부분 현장에서 안전모 외 장비는 지급되지 않거나, 지급돼도 작업 속도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착용을 기피하게 만든다”며 “장비 지급 및 착용에 대한 현장 단속을 강화하고, 미준수 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영세 사업장은 외국인과 고령 근로자 비중이 높아 안전에 취약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현장 지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고령 근로자는 오랜 작업 습관 탓에 사고 위험이 크다.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장은 “외국인과 고령 근로자가 많은 하도급·소규모 사업장은 위험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며 “근로자 특성을 고려한 교육과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우 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 의무가 원청에만 집중되면서 하청에는 책임 의식이 옅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근로자도 스스로 보호 의무의 주체임을 인식하고 장비 착용과 수칙 준수를 생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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