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병상 아닌 집에서 그렇게 마지막 맞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노인 1000만 한국, 품위있는 죽음을 묻다]
고령자 방문간호 법제화 덴마크
노인 2명중 1명 자택서 임종 맞아
고령화 훨씬 빠른 韓은 14% 그쳐
노인 복지 놓고 젊은층과 갈등도

4일(현지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시내 포울 옌센 씨(81) 자택. 파킨슨병 환자인 옌센 씨는 하루 2차례 장으로 연결되는 복부 호스로 약물을 주입해야 한다. 제때 정량의 약물을 투입하지 않으면 근육이 뻣뻣해져 제대로 거동할 수 없다. 옌센 씨는 “간호사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약물을 주입하는 펌프를 스스로 교체하고 조작해야 했다”며 “나이가 들어 직접 조작하기 어려웠는데 매일 간호사가 방문해 돌봐 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옌센 씨는 난치병을 앓고 있지만 하루 2차례 찾아오는 방문 간호사 덕에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60년 넘게 살아온 아내와 함께 자택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치료를 받는다. 옌센 씨 아내도 “가족이 함께 살아도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고령의 아버지, 할아버지를 계속 돌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며 “집까지 찾아오는 의료진 덕분에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 오르후스대 병원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덴마크 71세 이상 노인이 자택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54.7%에 이른다. 노인 2명 중 1명은 차가운 병상이 아닌 가장 익숙한 자택에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2023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자택 사망 비율이 14%에 그친다. 77.4%는 병의원에서 숨졌고 나머지는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임종을 맞았다.

덴마크 정부는 2015년 장관급 부처 고령부(Ministry of Senior Citizens)를 신설했다. 노인 대상으로 재택 요양에 중점을 두고 질병 예방, 관리, 치료 등을 기존 사회복지 체계와 함께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현한다. 덴마크는 한국보다 고령화 진행 속도가 더뎌 2050년에 65세 이상이 인구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기준 65세 이상이 1012만2000명에 달했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서 ‘품위 있는 죽음’은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재정이 들어가는 노인 복지를 두고 젊은층 부담 증가에 따른 세대 간 갈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덴마크의 조세 부담률(국민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43.4%이나 한국은 19.0%에 그쳤다. 오랫동안 ‘더 내고 더 받는’ 사회보장이 정착된 유럽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사회보장 취약, 노후 준비 부족, 세대 갈등 심화 등 3중고에 시달리며 품위 있는 죽음이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덴마크, 영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6개국을 찾아 재택의료부터 치매 돌봄, 호스피스, 연명의료 중단 등 다양한 생애 말기 돌봄의료 시스템을 취재했다. 이들 국가는 세대 간 갈등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고령자가 생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 개인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있었다.

요양원 대신… 간호사-약사-간병사 팀 꾸려 중증환자 자택 치료

〈1〉방문간호 서비스 활발한 덴마크
간호사 한명이 하루 8∼12곳 방문… 치료 외에 말동무 ‘이웃’ 역할도
“고령층, 병원보다 지역사회 머물게”… 1958년부터 재택 요양 정책 추진
4일(현지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시 소속 방문간호사 멧테 비스고르 씨(왼쪽)가 80대 환자 포울 소렌센 씨의 자택을 방문해 상처 부위를 치료하고 있다. 소렌센 씨는 호흡 기능이 저하돼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방문간호 서비스를 받으며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코펜하겐=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4일(현지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시 소속 방문간호사 멧테 비스고르 씨(왼쪽)가 80대 환자 포울 소렌센 씨의 자택을 방문해 상처 부위를 치료하고 있다. 소렌센 씨는 호흡 기능이 저하돼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방문간호 서비스를 받으며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코펜하겐=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병원 치료를 시작하기에는 아직 환자 몸무게가 너무 나갑니다. 집에서 체중을 더 감량한 뒤 입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4일 오전(현지 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방문간호센터. 간호사 10여 명이 모여 이날 방문할 환자 상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환자별 담당 간호사는 정해져 있지만 환자 상태를 공유하고 좀 더 적절하게 치료하기 위해 매일 아침 회의를 갖는다. 회의를 마친 뒤 간호사들은 자신이 맡은 환자 집으로 향했다.

덴마크는 1937년 생후 1년 이내 아동 질병을 줄이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산모와 아기를 대상으로 간호사 가정 방문 제도를 처음 도입됐다. 유아 사망률이 크게 떨어지며 방문간호의 개념이 덴마크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1958년 가사 보조 및 가정 간병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고령자를 위한 방문간호 서비스가 법제화됐다. 1960, 70년대 고령화율이 10%를 넘기며 고령자 방문간호 서비스가 확대됐다.

● 간호사-약사-간병사 함께 방문간호도

방문간호사 멧테 비스고르 씨(41)는 이날 오전 브리핑을 마친 뒤 마레크 푸시오 씨(72)의 자택을 찾았다. 하지만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비스고르 씨는 “푸시오 씨는 보통 직접 문을 열어줬는데, 오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상태가 많이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방문간호사는 환자가 직접 문을 열 수 없는 정도의 상태를 대비해 미리 디지털 열쇠를 받아둔다.

푸시오 씨는 하반신이 부어 작은 상처도 잘 치료되지 않는 상태로 침대에 누운 채 방문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스고르 씨는 가져온 의료 상자에서 붕대와 약물 등을 꺼내 엉덩이와 발가락의 상처 부위에 피부 재생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았다. 푸시오 씨가 “환기하고 싶으니 베란다 문 좀 열어 달라”고 말하자 비스고르 씨는 가족처럼 편하게 문을 열어줬다.

코펜하겐시 소속 방문간호사는 24명이다. 간호사 한 명이 하루에 8∼12곳을 방문해 환자를 돌본다. 중증도에 따라 주 1회부터 하루 2차례까지 방문 빈도는 다양하다. 간호사 1명이 순회하며 환자들을 진료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중증 환자의 경우 약사, 간병사 등 최대 4명이 팀을 꾸려 이동하기도 한다. 고령자가 최대한 자택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13년간 대형 병원에서 근무하다 1년째 방문간호사로 일하는 비스고르 씨는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임상 경험 2년을 채우면 방문간호사로 일할 수 있다”며 “의사 없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므로 요건보다 긴 임상 경험을 쌓고 방문간호사를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 “적절한 시기 계획해야 자택 사망 준비 가능”

덴마크는 자택 돌봄 서비스가 발달해 있다. 2020년 스웨덴 스톡홀름대 조사에 따르면 북유럽 4개국 중에서 65세 이상이 방문간호 등 자택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덴마크가 11.3%로 가장 높았다. 스웨덴 8.4%, 노르웨이가 7.3%, 핀란드는 5.8% 등의 순이었다.

덴마크는 오랜 기간 재택 요양 정책을 추진해 왔다. 고령층과 환자들이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 들어가기보다는 최대한 지역사회에 머물면서 돌봄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와 방문간호사, 간병사는 이웃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생전에 마냥 자택에서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는 건 아니다. 죽음에 대해 쉽게 언급하지 않고 임종이 가까워지면 여전히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려는 가족들도 많다. 오베 고르보에 호르센스병원 교수는 “의료진도 사망에 대해 언급하기를 금기시하기도 한다”며 “그래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적절한 시기에 계획해야 바람대로 집에서 사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펜하겐시에 사는 80대 노인 포울 소렌센 씨의 집에는 하루 최대 돌봄 인력 3명이 방문한다. 그는 호흡이 약해져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며 비상 상황을 대비해 오른손 손목에는 인근 병원으로 연결되는 호출 벨을 착용하고 있다. 소렌센 씨의 아내 수산 씨는 “방문간호사가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며 “돌봄 서비스도 만족스럽지만 좋은 말동무가 생겼다는 점도 고령자에게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덴마크#고령자 방문간호#고령화#노인 복지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