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부터 오락 금지 조치…“국가유산 보호 취지”
“인근 깨끗해졌다” 긍정 여론…일각선 “노인들 어디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오락 활동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2025.8.20/뉴스1
“장기판들이 길거리에 있을 때는 굉장히 지저분했는데 이제 아주 깨끗해진 것 같아요.”
“노인들은 장기 두는 게 낙이었는데, 이젠 갈 곳이 없어졌어요.”
지난 20일 오전 찾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여느 때면 아침부터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로 가득해야 할 공원이 한산했다. 열 명 남짓한 어르신들은 그저 뜨거운 해를 피해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장기판과 바둑판 등이 설치돼 북적였던 탑골공원 인근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5.8.20/뉴스1공원 북문 측으로 거리를 가득 메웠던 장기판과 바둑판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훈수를 두는 어르신들과 약주 한잔을 걸치며 차례를 기다리는 익숙한 풍경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최근 탑골공원 유적 보호와 미관 등을 위해 오락행위를 제한하면서 공원 일대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지자체와 경찰의 방침을 두고는 ‘거리가 깨끗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어르신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다.
21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종로구청과 종로경찰서는 지난달 31일부터 탑골공원 내부와 인근 노상에서 하는 오락 행위를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지자체와 경찰이 조치에 나선 이유는 문화유산인 탑골공원 내 질서를 확립하고 내외부에서 오락, 음주로 발생하는 시비나 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탑골공원은 국가유산 보호구역으로 이용 질서 확립과 역사적 상징 위상 회복을 위해 장기간 체류, 노상 음주, 오락, 흡연 등을 금지해 정숙하고 질서 있게 관람하는 공원으로 개선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음주 및 오락 제한 구역은 국가유산 보호구역에 해당하는 공원 담당 안쪽과 담장 밖 전체다. 이에 따라 담장 바깥으로 장사진을 이뤘던 장기, 바둑판들도 사라지게 됐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공원 외부의 경우 강제적인 조치가 아니라 장기를 둘 수 있는 책상이나 의자를 인도상에 깔아두시는 분들과 협의해 자진 철거하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전했다.
어르신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 모여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1.10.19/뉴스1
탑골공원에는 이를 안내하는 표지판도 곳곳에 붙었다. 표지판에는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바둑, 장기 등 오락행위, 흡연, 음주·가무, 상거래 행위는 모두 금지된다”고 적혔다.
탑골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길병석 씨(67)는 “과거에 (탑골공원에) 왔을 때는 굉장히 지저분하고 장기를 두시는 분들이 통행에 불편을 줬다”며 “조치 후에는 정돈이 되고 관광객들도 편하게 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길 씨는 어르신들에게 물을 배부하며 “이전에는 장기를 두는 분들로 근처가 혼잡했는데 이제는 줄을 서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며 “탑골공원은 우리 사적이다. 외국 사람들에게 선입견이 생겨서 안 좋았는데 잘 정리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가 문화유산 경관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이 여가를 즐기던 공간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근에서 꽈배기 집을 운영하며 장기를 즐겨 뒀다는 박손서 씨(75)는 “노인들은 장기 두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한꺼번에 치워버리니 노인들이 갈 곳이 없어 헤매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박 씨는 “최근 (탑골공원을 방문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줄었다”며 “이날 종로구청 문화재과에서 나오셨길래 장기를 좀 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도 드렸다”고 했다.
한편 종로구청은 경찰과 협력해 탑골공원 인근에 내려진 조치가 잘 준수되는지 기초 질서 위반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공원 내 관람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가 이뤄질 경우 문화유산법 제101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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