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높던 ‘철밥통’ ‘워라밸’ 등 옛말
“일만 많고 보수 적다” 청년층 외면
경직된 조직문화-인사 적체도 문제
재경직 5급 수석이 로스쿨 택하기도
“어렵게 입사한 선배들이 낮은 급여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걸 보니까 ‘내가 굳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진호 씨(29)는 2년간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을 지난해 포기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아무리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지만, 요즘은 일에서 최소한의 비전과 동기를 찾으려 하는데 공무원직에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민간기업 인턴으로 일하며 정규직 입사를 준비 중이다.
● 4년 새 31만3000→12만9000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다. 불과 4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한때 5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청년층의 ‘워너비’ 직장이던 공무원직이 이제는 사기업과 전문직에 밀려 비선호 직종으로 전락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20∼34세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일반직 공무원(7, 9급·경찰 소방 군무원 포함)을 준비하는 청년은 12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15만9000명)보다 3만 명 줄었다. 2021년(31만3000명)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7년(30만6000명) 이후 최저다.
청년층의 ‘고시·전문직 준비생’ 역시 4년 연속 감소세다. 행정고시 등 5급 공채와 변리사, 회계사 등 전문직 시험 준비생도 같은 기간 21만5000명에서 8만1000명으로 줄었다. 반면 일반 기업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같은 기간 4만 명 가까이 늘었다.
공무원 지원자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격무에 비해 낮은 보수가 꼽힌다. 2025년 기준 9급 공무원 초임 기본급(1호봉)은 약 200만 원 수준이다. 여기에 수당을 더해도 총보수는 민간기업 신입 평균(20대 후반 기준 월 300만 원대)보다 한참 낮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공무원 2만7000여 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지원 감소 원인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 ‘민간에 비해 낮은 보수 때문’이란 응답이 88.3%에 달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초임 사무관도 밤샘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업무량에 맞는 보상이 없어 후배에게 일을 시킬 때도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5급 공채 재경직 수석 합격자가 법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해 퇴사하는 등 이탈 사례가 이어졌다.
● “겸직 허용 등 자율성 강화 필요”
과거 공무원의 장점으로 꼽히던 ‘철밥통’과 ‘워라밸’도 옛말이 됐다. 인구 감소로 청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진 민간기업들이 공무원 못지않은 복지를 제공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자기 계발과 성장 기회를 중시하는 MZ세대 성향과 맞지 않는 경직된 조직 문화도 매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인사 적체 역시 고질적인 문제다. 다른 부처 관계자는 “승진이 지연되면 협업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크고, 후배 기수에게 하대받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직 매력도를 높이려면 시대 변화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율성을 중시하는 청년들의 관점에서는 다양한 기회와 역동성을 제공하는 사기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일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공무원에게 겸직 허용 범위를 넓힌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무원의 질적 저하는 결국 공적 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단순히 충성심에 기대기보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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