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귀멸의 칼날’ 극장가 돌풍… ‘오타쿠’ 문화 벗어난 일본 만화영화
애니메이션-캐릭터 산업이 키운 日 성우
지난달 국내 방문… 팬 수백명 환호
日 ‘성우 콘서트’ 수만 명 몰리기도… 연예기획사 소속돼 이미지 등 관리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일본 성우 하나에 나쓰키(오른쪽)와 시모노 히로. 각각 ‘탄지로’, ‘젠이츠’ 역을 맡았다. 양쪽으로는 ‘탄지로’와 ‘네즈코’ 탈인형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CJ ENM 제공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
극장 로비엔 200명가량 인파가 몰려 번잡했다. 이들은 모두 단지 두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국내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주역 ‘탄지로’와 ‘젠이츠’의 목소리를 각각 연기한 일본 성우 하나에 나쓰키(34)와 시모노 히로(45)였다. 얼굴도 낯선 성우들이 레드카펫에 등장하자, “사랑해요!” 같은 연호와 함께 큰 환호성이 쏟아졌다.
국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목소리를 연기한 일본 성우들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작품 속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팬들이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불어넣는 성우에게까지 열광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진격의 거인’ ‘귀멸의 칼날’ ‘체인소 맨’ 등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국내에서도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히면서,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에서는 특정 성우가 참여한 여러 작품 속 캐릭터를 비교한 영상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성우의 토크쇼 영상은 조회 수가 100만 건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사실 일본에선 성우가 이미 아이돌과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기 성우의 경우 단독 콘서트도 개최할 정도다.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씩 관객이 몰린다. 또 성우들의 결혼이나 연애 등 사생활마저 연예인 대하듯 관심이 쏟아진다. 지난해 ‘명탐정 코난’ ‘기동전사 건담’ 등에 출연한 베테랑 성우 후루야 도루(72)가 30대 팬과 불륜을 저지른 사실은 일본 사회에서 주요 뉴스가 되기도 했다. 후루야 성우는 결국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했고, 장문의 사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성우의 아이돌화’ 현상은 급속히 성장한 일본의 캐릭터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198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은 공상과학(SF)이나 무거운 주제의식을 다루던 흐름에서 벗어나, 밝은 분위기와 개성 강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에 성우의 역할 역시 부각되며 인기가 높아졌다. 한국이 방송사 공채 중심으로 성우를 뽑아왔던 것과 달리,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체계적인 이미지 관리와 지원을 받는 일본 특유의 산업 구조도 성우의 스타성을 키우는 밑바탕이 됐다.
국내에서도 과거 성우들이 스타급 대접을 받은 사례가 없진 않다. 미국 드라마 ‘600만 불의 사나이’의 스티브 오스틴을 연기한 양지운 성우나 ‘맥가이버’의 배한성 성우 등은 드라마 등에도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스타로 자리잡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유진희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겸임교수는 “성우들이 가장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영역은 애니메이션인데, 국내 제작 산업 규모가 충분하지 않아 활동 기회가 제한적”이라며 “국내 성우들의 역량 또한 뛰어난 만큼 제작 생태계가 커지면 관심도 아울러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