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학년도 수능서 뺀 과목, 대학선 ‘이수’ 요구…대입 엇박자에 사교육 조장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1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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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교부받은 문답지에 이름 등을 작성하고 있다. 2025.09.03 뉴시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3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수험생들이 교부받은 문답지에 이름 등을 작성하고 있다. 2025.09.03 뉴시스
현 고1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수학 영역 범위에 심화 수학에 해당하는 ‘미적분Ⅱ’와 ‘기하’가 제외되는 가운데 서울 주요 대학이 자연 계열 지원 시 해당 과목과 함께 특정 과목 이수를 권장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 당시 자연계열 입학생들이 기초 수학 역량이 부실해진다며 관련 학계가 반발했지만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는 학업 부담과 사교육 완화 등을 이유로 심화수학을 수능에서 제외시켰다. 또 현 고1부터 학생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수강 할 수 있게 하겠다며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상황이다. 그러나 대학이 특정 과목을 이수하고 지원하도록 하면서 정책과 실제 입시의 엇박자로 현 고1 학생들의 학업 부담과 사교육 성행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

주요 대학, 수능에서 빠지는 심화수학 이수 권장

최근 각 대학이 고교학점제가 시행 중인 현 고1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의 모집단위별 권장 이수과목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 주요 대학 상당수는 자연계열 지원자를 대상으로 미적분Ⅱ와 기하 및 일부 과학 과목을 이수 권장과목으로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는 최근 2028학년도 전공 연계 과목 선택을 안내하며 자연과학대학 의과대학 공과대학 등에 지원하려면 미적분Ⅱ와 기하 두 과목 모두 이수할 것을 권장했다. 또 물리·천문학부 물리학전공 및 기계공학부 등은 ‘물리학’, 의과대학은 ‘세포와 물질대사’, ‘생물의 유전’을 포함해 3과목 이상 이수하라고 권장했다. 중앙대도 최근 2028학년도 대입 권장과목을 발표하며 기계공학부, 물리학과, 의학부 등은 미적분Ⅱ와 기하를 이수하도록 했다. 경희대도 필수 이수 권장 ‘핵심 과목’에 미적분Ⅱ과 기하를 포함했다.

문제는 대학이 요구하는 미적분Ⅱ와 기하가 2028학년도 수능 범위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현행 수능 수학 영역은 수학Ⅰ과 수학Ⅱ를 공통 과목으로 치르고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 선택 과목이 3개 있어 미적분과 기하는 주로 자연계열 지원자가 응시했다.

2025년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3일 광주 광산구 정광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루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028학년도 수능부터 선택과목이 폐지되며 인문·자연계열 상관없이 모든 수험생이 같은 과목을 응시하는데,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만 공통 과목이다. 미적분Ⅰ은 과목 명칭은 비슷하지만 현행 수학Ⅱ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현행 미적분과 기하는 수능 범위에서 빠진다.

권장 과목을 지정하지 않은 대학도 있지만 상위권 상당수 대학의 일부 학과에 지원하려면 수능에서 치르지 않을 특정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권장과목 이수 여부를 정량평가 뿐만 아니라 정성평가로 보겠다는 대학이 많기 때문이다.

학생 학업 부담…수시-수능 간 괴리 커져

사실상 현재 고1 학생들이 고교학점제와 별개로 목표 대학과 학과를 1학년부터 명확하게 정하고 권장 과목을 정확히 이수해야 대입에 성공할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이 자신의 흥미나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듣게 하자는 고교학점제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특정 과목을 듣고 싶어도 학교에 따라 개설이 안 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이상민 경기 이현고 교사(39)는 “진로가 불분명한 학생의 경우 선택 과목 개수는 한정돼 있는데 학과마다 권장 과목이 달라서 과목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각 학교마다 과목 개설 현황도 다르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학생이 가고 싶은 학과를 결정해 2학년 때 수업을 듣다가도 공부하다 흥미가 생기는 분야로 진로를 바꿀 수 있는데 권장과목 때문에 진로를 바꿀 수가 없지 않겠냐고 불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각 대학이 산발적으로 권장과목을 발표하다 보니 미리 진로를 정하고 관심을 계속 기울이지 않으면 나중에 해당 대학에 지원하기 곤란해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교육부는 각 대학에 지난달 말까지 권장과목 발표 협조를 요청했지만 상당수 대학이 완료하지 않아 수험생이 일일이 각 대학 홈페이지를 보며 확인하고 정보를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고1부터 학원가에서 고교학점제 선택 과목과 학교생활기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까지 컨설팅 받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이러한 컨설팅으로 1회 50만 원, 연간 600만 원 가량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한 학부모는 “짜여진 시간표대로만 수업을 듣던 아이가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도 막막한데 대입에 영향을 미친다니 컨설팅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에게는 자연계열 지원시 수능 준비와 별개로 내신으로 심화 수학과 상위권 대학이 요구하는 일부 과학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것도 부담이다. 특히 현 고1학생들부터 등급별 구간이 넓어진 내신 5등급이 적용돼 1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다. 이 때문에 내신을 위한 사교육도 성행 중이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학생이 고교에서 대학이 제시한 권장 과목을 이수했을 경우 감점 아닌 가점을 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이지만 학생이 학업 부담을 덜 가지긴 어렵다”며 “수시와 수능 간 괴리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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