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옹진군 영흥도 갯벌에서 고립된 70대 중국 국적 남성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홀로 수영해 나오다 물살에 휩쓸려 숨진 해양경찰관 사고가 인재(人災)였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출동 원칙인 ‘2인 1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고, 숨진 경찰관이 추가 인력 투입을 요청했지만 파출소 측이 대응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해경은 진상조사단을 꾸려 사건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 “추가 인력 필요” 무전에도 인력 투입 안해
14일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가 작성한 무전 녹취록에 따르면, 11일 오전 2시 7분경 드론 순찰업체로부터 영흥면 꽃섬 인근 갯벌에서 한 남성이 구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당직 중이던 고(故) 이재석 경사(34)는 혼자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 경사는 2시 25분 현장에 도착해 “현재 요구조자(70대 남성) 확인. 입수해어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파출소 팀장에게 무전 보고했다. 팀장이 수심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이 경사는 “수심이 좀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팀장은 “혼자 가능하겠어?” “누구 좀 보내줄까?”라고 되물었고, 이 경사는 “일단 한번 들어가보겠다”면서도 “물이 차올라서 (추가 인력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당시는 대조기(조수 간만의 차가 극대화하는 때) 밀물 시각이어서 지자체와 해경이 야간 드론까지 띄워 입수를 엄격히 통제하는 위험한 시간대였다.
하지만 파출소 측은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지 않았다. 팀장이 “서(인천해경서)에 보고하고 (자고 있는) 숙직자를 깨워서 같이 상황 대응을 하자. 어떻게 생각해”고 물었다가 이 경사가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데 일단 가 보겠다”고 답하자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외국인(중국인)에게 구명조끼 벗어주고 구조하다 사망한 해경이 요구조자에게 구명조끼 벗어주는 모습 찍힌 영상. 인천해경 제공이 경사는 2시 56분 “요구조자는 발이 베어 거동이 안 된다고 해서 구명조끼를 벗어드려서 이탈시키도록 하겠다. 물은 허리 정도까지 차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자신의 구명조끼와 장갑까지 건네고 홀로 수영해 이동하다가 급격히 차오른 물에 휩쓸린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이 경사의 무전은 끊겼고, 영흥파출소는 3시 9분이 되어서야 “물이 많이 차 있다”는 드론업체의 연락을 받고 추가 인력을 보냈다.
이 경사는 출동 6시간 뒤인 오전 9시 41분 꽃섬에서 1.4km 떨어진 해상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그가 구명조끼를 입힌 70대 남성은 스스로 걸어 나와 구조됐다. 파출소는 3시 30분에야 이 경사의 실종 사실을 상황실에 보고했다. 출동한 지 83분 만이었다.
● “2인1조 출동규칙 안 지켜져”… 해경, 진상조사단 구성
유족들은 이 경사가 사고 당일 2인 1조가 아닌 혼자 순찰차를 타고 출동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해양경찰청 훈령 ‘파출소 및 출장소 운영 규칙’에는 “순찰차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2명 이상 탑승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파출소 팀장은 혼자 구조에 나서는 상황을 알면서도 숙직자를 깨워 출동시키지 않았다. 이 경사는 해경에 입직한 지 4년밖에 안 된 신참 경찰이었다.
사고 당시 영흥파출소 근무자는 6명이었다. 하지만 4명은 휴게 시간이라 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흥파출소가 신고 접수 뒤 인천해경서 상황실에 1시간여가 지나서야 보고한 점도 대응 부실로 지적된다.
해경은 이날 “사고 과정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외부 전문가 6명으로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며 “신고 접수 뒤 대응과 장비 지원 등이 적절했는지를 포함해 모든 구조 과정에 대해 명백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단은 15일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12일 인천 시내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이재석 경사의 빈소에 국화꽃이 놓여져 있다. 2025.9.12 뉴스1한편 이 경사의 영결식은 15일 오전 10시 30분 인천해양경찰서에서 엄수된다. 오상권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은 영결식 직후 이번 사고에 대한 공식 조사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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