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재해 발생 기업에 ‘영업이익의 5% 이내 과징금’이라는 강력한 제재를 도입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산재 사망 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영업손실이 발생하거나 공공기관처럼 영업이익을 공시하지 않는 경우에도 과징금 하한액인 30억 원을 매기기로 했다. 산재 사망자는 2022년 644명에서 지난해 589명으로 55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식품회사 SPC그룹과 건설회사 포스코이앤씨 등 기업에서 잇단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이재명 대통령도 과징금과 건설사 면허 취소 등 경제적 제재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는 국회에서 추진 중인 ‘매출액 3% 이내 과징금’보다 오히려 강화됐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엄벌 위주의 정책이 산재 발생을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부가 15일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과징금과 건설사 등록 말소 규정 신설, 영업정지 대상 확대 등 경제적 제재 방안이 담겼다. 정부가 내놓은 ‘영업이익 5% 내 과징금’에 대해서는 국회 논의보다 완화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인 2022년 1월부터 올 3월까지 산재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대우건설의 경우 매출액(지난해 10조5036억 원) 3% 기준이라면 3151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하지만 영업이익 5% 이내라면 과징금이 202억 원으로 줄어든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매출액 기준은 (공장 등) 현장 단위로 부과하지만 영업이익 기준은 법인 기준으로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조 단위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대기업에서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할 경우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한 건설사에 대해서는 노동부가 국토교통부에 등록 말소를 요청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 건설사 영업정지 요청 요건도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한다. 한 사고에서 2명 이상 사망한 경우가 아닌 연속적인 사고에도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건설사는 공공사업 입찰 자격 제한도 강화한다. 현재 ‘2명 이상 동시 사망’인 제한 요건을 ‘중대재해가 반복 발생하는 경우’로 확대하고, 현재 2년인 입찰 제한 기간도 3년 등으로 늘리기로 했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이 대출금리나 한도, 보험료 등에서 불리하도록 금융권 자체 여신심사 기준과 대출 약정 등도 바꾼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과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대출보증 취급 시 안전도 평가에서 감점하기로 했다.
중대재해 발생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은 해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마련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산재 예방 분야의 배점을 현재 0.5점에서 2.5점으로 5배로 늘리기로 했다.
사고 발생 위험이 있을 때 근로자가 직접 사업주에게 적극적으로 작업 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신설한다. 산업안전감독관은 2028년까지 3000여 명 증원한다.
● “제재 일변도 대책, 산재 막기 어려워”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올해 안에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령 등을 개정해 과징금 도입과 등록말소 요청 규정 신설, 영업정지 대상 확대 등을 내년부터 적용할 계획이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노총은 이날 입장문에서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면서도 “산재 사각지대 해소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입장문에서 “대책 내용이 법제화되면 경영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산업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이번 대책이 산업 현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재 예방보다는 제재 일변도의 대책”이라며 “노동자에게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안전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고 기업에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비용이 공사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규정을 강화해도 현장에서는 지키기 어렵다”며 “사회적 비용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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