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안 한 것은 남들이 다 안다”
속담 있을 정도로 명절만큼 중요
부상자 10명 중 9명, 8-9월 발생
소방본부 ‘안전사고 주의보’ 발령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의 벌초 현장. 제주에서는 공동묘지보다는 오름이나 수풀에 무덤이 있는 경우가 많다. 독자 제공
제주에서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봄철 한식에 친족이 한데 모여 제사를 지낸 뒤 조상의 묘를 돌본다. 이 과정에서 잔디를 새로 심거나, 묘지를 둘러싼 담을 정비하기도 한다.
제주가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은 음력 8월 초하루 전후로 진행하는 ‘벌초’다. 친척끼리 길게는 사흘 동안, 많게는 수십 기의 묘를 벌초한다. 특히 말이나 소가 묘를 훼손하거나 산불에 의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무덤 주위를 ‘산담’으로 둘러싸는 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예초기가 일상화하기 전에 사용했던 ‘장낫’과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 터를 지키는 ‘동자석’ 등도 제주의 독특한 문화로 꼽힌다. 제주만의 벌초 문화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학계에서는 매장 풍습이 시작된 15세기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독특한 문화만큼 제주인에게도 벌초는 명절보다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진다.
‘식께 안 한 건 몰라도 소분 안 한 건 놈이 안다’(제사 안 한 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10여 년 전만 해도 도내 모든 초중고교가 음력 8월 1일이 되면 임시 휴교일로 ‘벌초 방학’을 시행하기도 했다. 2004년 벌초 방학을 시행한 학교는 166개교 가운데 93.2%였고, 2007년에는 178개교 중 60%에 해당하는 106개교가 벌초 방학을 실시했다. 그러나 현재는 사실상 사라진 방학으로 남았다.
벌초 시기에는 소방당국도 긴장한다. 늦더위가 한창인 시기라 온열질환은 물론 예초기와 낫으로 작업하다 신체를 다치는 사고도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제주지역 벌초 안전사고는 사망자 없이 부상자만 170명 발생했다. 이 가운데 149명(87.7%)이 추석을 앞둔 8, 9월에 집중됐다.
원인별로는 예초기 등 농기계에 의한 사고가 70명(41.2%)으로 가장 많았다. 무리한 작업 등 신체적 요인 53명(31.2%), 온열질환 10명(5.9%) 등도 있었다. 시간대별로는 벌초 작업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오전 7∼11시가 108명(63.5%)으로 가장 많았다.
이에 제주소방안전본부는 16일 ‘벌초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했다.
제주소방은 예초기 사용에 대해 △작업 목적에 맞는 예초기 칼날 사용 △작업 전 위험 요소 제거 △상단→하단, 우측→좌측으로 작업 △15m 이상 안전거리 유지 △동력 제거 후 이물질 제거 등을 당부했다.
주영국 제주소방안전본부장은 “예초기 사용 시 주변인 사고 비율이 높은 만큼 작업 할 때는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고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관심과 실천으로 도민 모두 안전하고 풍요로운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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