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에 운영 힘들자 대여후 수익
무자격자들 병원-약국 쉽게 차려
불법-과잉 진료로 건보재정 악화
“특별사법경찰 도입 단속 강화를”
제주 제주시의 한 40대 치위생사는 치과의사로부터 면허를 대여해 불법 의료기관(사무장 병원)을 열었다. 70대 치과의사는 나이가 들어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매달 600여만 원을 받는 조건으로 치위생사에게 면허를 대여해 줬다. 치위생사는 30대 월급 의사를 고용해 진료를 보게 했다. 이 병원은 2020년 10월부터 2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급여 6000여만 원을 받다가 결국 2022년 적발됐다.
이 병원처럼 최근 5년간 이른바 ‘사무장 병원’ ‘면대(면허 대여) 약국’으로 불리는 불법 의료기관에 면허를 빌려준 보건의료인 10명 중 6명이 60대 이상 고령자로 나타났다.
26일 건보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적발된 의료인 면허 대여자 257명 중 162명(63.0%)이 60대 이상 의료인이었다. 80대 이상은 75명으로 29.2%를 차지했다. 고령으로 병의원이나 약국을 직접 운영하기 어려워 면허 대여를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려는 의료인들과 건보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하며 적은 투자금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불법 의료기관 개설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면허 대여자 직종별로는 약사가 257명 중 86명(33.5%)으로 가장 많았다. 치과의사(74명), 의사(71명), 한의사(26명)가 뒤를 이었다. 면허 대여를 통해 개설된 불법 의료기관은 약국이 89곳으로 가장 많았으며, 치과(74곳), 병의원(72곳), 한의원(22곳), 요양병원(21곳), 한방병원(7곳) 등이었다.
면허를 빌려 불법 의료기관을 개설한 이들은 대부분 의료인력이 아닌 일반인(368명)이었고, 물리치료사와 방사선사 등 단독으로는 의료기관 개설을 할 수 없는 보건의료인 27명이 포함됐다.
● 수익 극대화 위해 과잉 진료, 건보 재정 악화
의료인의 면허를 대여해 개설된 불법 의료기관은 건보 재정 누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은 운영자, 실제 진료하는 고용 의사, 면허 대여자 등이 수익을 나눠야 하기 때문에 환자를 상대로 과잉 진료 행위를 유도하거나, 불필요한 의약품을 과다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이들 불법 의료기관에서 환수한 금액은 총 9214억 원에 이른다. 이 중 불법 병의원 환수 금액은 4974억 원, 불법 약국 환수 금액은 4240억 원으로 집계됐다.
건보공단은 불법 의료기관을 적발하기 위해 수사권이 있는 특별사법경찰권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불법 의료기관이 공단에 보험 급여를 청구하면서 적발되거나, 변호사, 보건의료 전문가, 전직 수사관 등 조사 인력을 두고 사무장 병원 등이 의심되는 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해 적발하고 있으나 강제 수사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면허 대여의 위험성 등에 대한 교육을 도입하는 등 보건의료인의 면허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사무장 병원 개설 여부는 주변 병원 의사들이 더 잘 안다”며 “전문가단체인 의협도 면허 대여와 처벌 등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 불법 행위 근절에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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