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쓰러진 50대 ‘맥가이버’, 5명에 새 생명 나누고 하늘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일 11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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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한여름 폭염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50대 남성이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 8월 14일 강북삼성병원에서 정명룡 씨(56)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리고 피부 등 인체 조직기증으로 100여 명의 환자의 기능적 장애 회복에 희망을 선물했다고 2일 밝혔다.

정 씨는 지난 7월 26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뜨거운 날씨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가 되고 말았다.

정 씨는 생전에 TV에서 기증 감소로 이식 대기자의 사망 수가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고 “사람은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데 삶의 끝에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면 좋은 것 같다”며 기증희망등록 신청과 함께 가족들에게 기증의 뜻을 전했다.

가족들은 다른 사람의 몸속에서라도 정 씨가 살아 숨 쉬길 바라는 마음과 기증을 원하던 정 씨의 뜻을 이뤄주고자 기증을 결심했다. 정 씨는 뇌사 장기기증으로 심장, 신장(양측), 안구(양측)를 기증해 5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 피부, 뼈, 연골, 혈관 등의 인체 조직도 함께 기증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정 씨는 배려심이 많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늘 먼저 나서서 도움을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밝은 사람이었다.

정 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재단사 업무를 40년 넘게 하며, 옷 만드는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터넷에 재단 관련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옷 제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장에 초청하거나 무료 강의를 통해 본인의 경험을 나눠주기도 했다.

집이나 공장에서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뭐든지 맥가이버처럼 금방 만들어 주는 만물박사였고, 이웃에게는 ‘이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서 도움을 주는 자상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정 씨의 아내 김혜경 씨는 “늘 고마웠고 너무나 수고했어. 갑자기 떠나니 마음이 무겁고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생명을 살리는 좋은 일을 하고 어디선가 살아 숨 쉰다니 위로가 되네. 하늘에서도 잘 지내고, 우리 지켜봐 줘. 고마워”라고 인사를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삼열 원장은 “생명나눔을 실천해 주신 기증자분과 유가족분들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에 감사드린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과 같은 일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고 밝게 밝히는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폭염#뇌사#장기기증#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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