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중고거래 플랫폼에 ‘추석 선물’을 검색하자 각종 선물세트 판매 글들이 올라왔다. 당근마켓 앱 갈무리
“미개봉 새 제품입니다. 추석 선물세트 미리 준비하세요” “선물 받자마자 올립니다. 고급스러운 포장에 담겨 있어요”
추석 연휴 일주일을 앞둔 지난달 27일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각종 추석 선물세트를 팔겠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당근마켓에 ‘추석 선물’을 검색하자 홍삼·스팸·참치 등 다양한 선물세트가 시중보다 싼 가격에 올라왔다. 정가보다 20~30%가량, 크게는 반값 이상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한 판매자는 정가 6만2800원 스팸 세트를 2만5000원에 내놨다. 또 다른 판매자는 정가 9만1000원짜리 홍삼을 5만 원에 팔았다. 대부분 인터넷 최저가보다 낮은 가격이었다.
서울 소재 한 마트에서 판매 중인 홍삼 추석선물 세트(왼쪽)와 중고거래 플랫폼에 저렴한 가격으로 올라온 홍삼선물 세트(오른쪽). 사진=김예슬 기자. 2025.10.02이른바 ‘명절테크(명절+재테크)’다. 명절테크란, 회사나 지인에게 받은 명절 선물세트를 정가보다 싸게 되파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정가보다 싸게 중고로 선물세트를 구입하는 것도 명절테크다. 판매자는 자기에게 필요 없는 선물을 현금화할 수 있고, 구매자는 저렴한 가격에 선물 세트를 확보할 수 있다.
서울 중구의 직장인 조모 씨(25)는 지난달 28일 회사에서 받은 추석 참치 선물세트를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렸다. 기자는 해당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조 씨와 연락해 직거래로 이 참치 선물세트를 샀다. 공식몰 기준으로 78900원인 참치세트를 4만2000원에 살 수 있었다. 조 씨는 “평소에 참치를 먹지 않고, 가족 중에서도 먹는 사람이 없어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근마켓 앱에서 직거래를 통해 구입한 추석 참치선물세트(왼쪽)와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는 선물세트(오른쪽). 사진=김예슬 기자. 2025.10.02 그는 “회사는 아마 대량으로 저렴한 가격에 선물세트를 단체 구입했을 것”이라며 “이를 받아서 내가 되팔아 소액이지만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참치를 싫어해서 다른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는 데 쓸 것”이라고 했다.
조 씨는 가격을 4만2000원으로 책정한 이유를 “인터넷으로 네이버, 쿠팡 등을 검색했더니 가격이 나왔다. 그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올렸다”고 설명했다. 조 씨는 “동네 사람들이랑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어서 중고거래를 시작했다”며 “배송은 번거로워서 보통 직거래를 통해 판매하는 편”이라고 했다.
●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주 원인
서울 소재 한 백화점 매대에 진열된 과일선물 세트. 사진=김예슬 기자. 2025.10.02‘명절테크’가 인기를 끄는 원인 중 하나는 치솟는 먹거리 물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유독 먹거리 물가는 높았다. 농축수산물의 경우 13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올랐다. 먹거리 물가가 치솟자 추석 성수기를 대비하는 시민들이 홍삼, 스팸, 과일 선물세트 등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많이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시대에 필요 없는 물품은 중고 거래를 통해 빠르게 판매하고, 적은 경제적 이득이라도 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명절 선물의 종류는 제한적이어서 받는 사람 입장에서 불필요한 물품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자칫 범법자 될 수도… 이 물건 거래할 때 ‘주의’
2025.9.25/뉴스1중고 거래가 금지된 물건을 사고 팔다간 졸지에 ‘범법자’가 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최대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술은 주류판매 면허없이 팔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증정용 샘플 등으로 구성된 화장품, 나누어 소분한 화장품도 중고로 팔면 위법이다. 특히 화장품 샘플을 판매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도수 있는 안경이나 렌즈도 중고거래를 하면 안 된다.
판매가 허용되지만 몇 가지 조건이 붙는 물품도 있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 소재 한 백화점 매대에 진열된 홍삼 선물 세트. 사진=김예슬 기자. 2025.10.02홍삼 등 건강기능식품은 현재 한시적으로 중고거래가 가능하다. 단, ‘당근마켓’과 ‘번개장터’에서만 해야 한다. 다른 플랫폼에서 거래하면 불법이다. 또 미개봉 제품이어야 하고, 판매 글을 올릴 때 반드시 건강기능식품 전용 카테고리로 설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판매자들이 플랫폼에 판매 글을 올리기 전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교수는 “판매자들은 게시글을 올리기 전 포장이 훼손된 제품은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며 “상품의 이상 여부를 체크하고 소비 기한 등을 미리 살핀 뒤 판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한 판매자가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정가 6만2800원에 달하는 추석선물 세트를 2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예슬 기자. 2025.10.02
플랫폼 사업자들도 명절 거래는 좀 더 주의 깊게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 인천대 소비자학과 이영애 교수는 “(플랫폼 사업자는) 다양한 거래 정보들을 진정성있고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희 교수도 “플랫폼 내에 거래금지 품목 등 주의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문고리 거래 등 사기 거래 조심해야
게티이미지뱅크전문가들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의 사기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는만큼 구매자들도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최철 교수는 “판매자들의 과거 판매 이력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식품을 구매할 때는 개봉 여부 등을 따지고 가급적 구매를 지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사기를 당했을 때는 플랫폼 측에 연락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몇몇 중고거래 플랫폼은 기자가 고객센터에 전화했을 때 상담원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앱 내 고객센터 채팅을 통해서만 문의, 상담이 가능했다. 이 부분은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6월 중고거래 플랫폼을 이용한 ‘문고리 거래’ 방식의 사기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 사기 피해자는 “돈을 입금하면 아파트 문고리에 제품을 걸어두겠다는 안내를 받고 165만원을 선입금했지만, 판매자는 잠적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피해 금액이 사소하더라도 플랫폼 관계자에 피해 사례를 알리고, 소비자원이나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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