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라오스 국경에서 압수된 차(茶) 봉지 포장의 케타민. 제주 해안에서 발견된 마약과 봉지 디자인과 포장 방식이 동일하다. 말레이시아·태국·라오스 등 동남아 각국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차 봉지 마약’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사진 출처 꽝남국경수비대
제주 해안가에서 나흘에 한 번꼴로 ‘차(茶) 봉지 마약’이 발견되면서 지역사회에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접근이 쉬운 해안가 특성상 누구라도 우연히 마약을 접할 수 있는 데다 이를 취득하기 위한 마약사범들의 행렬까지 우려돼서다. 이런 가운데 제주에서 발견된 차 봉지 마약과 동일한 포장의 마약이 말레이시아와 태국,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경찰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마약이 해상 밀수 과정에서 유실 혹은 유기돼 제주에 떠밀려 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제주 해안에서 발견된 차(茶) 봉지 형태의 케타민. 동남아시아에서 압수된 마약과 봉지 디자인·포장 방식이 동일해, 해류를 타고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동남아에선 차 봉지 마약이 ‘스탠다드’
본보가 말레이시아와 태국, 라오스 언론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주에서 발견된 차 봉지 마약과 동일한 마약이 지속해서 적발되고 있다. 이달 6일(현지 시각) 태국 남부 춤폰주(Chumphon)에서 20대 말레이시아 남성이 케타민 75kg을 차에 싣고 가다 경찰에 체포됐다. 압수된 케타민은 제주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차 봉지였고, 약 1kg씩 포장된 것도 동일했다. 지난달에는 말레이시아 슬랑오르주(州)에서 경찰이 마약 밀매 조직을 습격해 케타민 약 200kg을 압수했다. 이 케타민 역시 제주에서 발견된 것과 똑같은 차 봉지였고, 포장도 1kg씩 돼 있었다.
경찰은 동남아시아에서도 동일한 차 봉지 마약이 적발되고 있는 점으로 미뤄 제주에서 발견된 케타민이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인 ‘골든트라이앵글(태국과 라오스, 미얀만 접경지역)’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마약이 해상 운송 과정에서 유실 혹은 유기돼 해류를 타고 국내 해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이다.
실제 작년 12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발표한 ‘동남아시아 합성마약 시장의 동향 변화와 한국에의 영향’에서도 “메스암페타민(필로폰)뿐만 아니라 케타민이나 야바와 같은 마약류도 동남아시아에서 국내로 유입되는 대표적 약물”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동남아시아 마약 시장에서 나타난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해로를 통한 마약 밀매 증가”라고 설명했다.
11일 제주 해안에서 진행된 ‘차 봉지 마약’ 합동 수색 현장. 경찰·지자체·군 등 민관군 관계자 800여 명이 참여해 해안가 일대를 집중 수색했다. 제주=송은범 기자 ●오남용에 마약사범 ‘줍줍’ 우려까지… 불안감 증폭
“애들이 우연히 주웠다가 오남용하면 어떡해요.”
12일 제주시 조천읍에 거주하는 이 모 씨(50)는 최근 제주 해안에서 발견되고 있는 차 봉지 마약에 대해 우려 섞인 입장을 내놨다. 9월 2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을 시작으로 이달 11일까지 44일 동안 총 10차례에 걸쳐 차 봉지 마약이 발견됐다.
이 씨의 걱정대로 발견된 마약은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는 바다환경지킴이, 낚시꾼 등 일반인에 의해 대부분 발견됐다. 마약을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하거나, 이미 발생했을 수도 있다. 이 씨는 “13살 난 아들에게 해안가로 가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며 “조용한 동네인데, 마약을 주우려 범죄자가 몰려들까 두렵다”고 했다.
우려가 커지면서 11일 민관군 관계자 800여 명이 제주 해안에 대한 전면 수색을 실시해 차 봉지 마약 추정 물체 1kg을 수거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경찰, 지자체, 검찰, 국정원 등 관계기관과 공조를 통해 수색과 수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아울러 도내 마약류 유통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는 한편 발견한 마약류를 소지, 사용하는 경우 처벌될 수 있으므로 습득 시 반드시 신고하여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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