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용 소화기’ 공백 11개월째… 막바지 검증 단계 들어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2일 01시 40분


[토요기획] 충전할 곳 없는 전기 이륜차
배터리 소화기 개발 어디까지 왔나… 불나도 일반 소화기 모두 무용지물
정부 기준 만들었으나 인증 제품 ‘0’… 내년 상용화 목표로 연구개발 진행

전기 이륜차에 주로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잇따르면서 이를 진화할 수 있는 ‘배터리 전용 소화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로선 정부 기준을 통과한 제품이 없어 불붙은 배터리를 물에 담그는 방식 외엔 마땅한 진화 수단이 없다. 하지만 국내 연구진이 제품 개발을 거듭하고 있어 이르면 내년 중 맞춤형 소화기가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 배터리 화재에 소용없는 일반 소화기

현재 전기 이륜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일반 소화기로는 진화가 불가능하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일반적으로 배터리 내부에서 화학 반응으로 온도가 1000도까지 치솟는 ‘열폭주(thermal runaway)’가 특징이다. 고온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산소까지 발생시키는 경우도 있어 외부 소화 약제로 제어하기가 매우 힘들다.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 2025.9.27 뉴스1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현장. 2025.9.27 뉴스1
한때 배터리 화재에 효과가 있다고 잘못 알려진 할론 소화기 역시 효능이 없다. 할론 소화기는 할로겐 가스를 분사해 연소 반응을 억제하는 원리지만 최대 1000도까지 온도가 상승하며 고온과 가스를 방출하는 배터리 화재 특성상 효과를 보기 어렵다. 실제로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당시 직원과 소방대원은 건물에 비치된 할론 소화기 등으로 진화를 시도했지만 불길을 잡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재로선 ‘물’이 가장 효과적인 진화 수단으로 꼽힌다. 2023년 이탈리아 사피엔차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리튬 배터리 화재는 불을 끄는 개념보다 ‘열폭주를 빠르게 냉각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연구진은 “실험 과정에서 물 기반 소화제가 가장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고 밝혔다.

● 정부 인증 제품 ‘0’… 시제품은 내년 출시 전망

문제는 실제 화재 현장에서 다량의 물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가정 내 충전 중 화재가 발생할 경우 배터리를 욕조 등으로 옮겨 담가야 하지만 열폭주가 발생한 배터리를 안전하게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 때문에 리튬이온 배터리 전용 소화기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경기 화성시의 리튬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 화재 이틀날인 6월 25일 오전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합동 감식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경기 화성시의 리튬전지 제조 업체인 아리셀 공장 화재 이틀날인 6월 25일 오전 화재 현장에서 국과수 합동 감식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소방청은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배터리 화재로 23명이 숨진 참사가 발생하자, 같은 해 12월 ‘소형 리튬 배터리 화재용 소화기’ 인증 기준을 신설했다. 그러나 기준이 마련된 지 11개월이 지난 현재도 이를 통과한 제품은 단 한 개도 없다.

공백이 이어지는 사이 온라인 시장에는 ‘리튬 배터리 전용 소화기’라는 이름으로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실제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리튬 배터리 소화기’를 검색하면 수십 종의 제품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정부의 인증을 받거나 효과를 본 제품은 사실상 전무하다.

기준과 인증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 내부의 혼선도 있었다. 행정안전부는 소방청 기준이 없던 지난해 한 업체가 제출한 ‘리튬 배터리 소화기’에 대해 ‘재난안전제품 인증’을 허가했다. 행안부는 산업 진흥 촉진 성격에서 인증을 허용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지만, 실제 안전 효과를 보장하는 인증은 아니어서 혼선을 키웠다.

그럼에도 관련 연구는 진전되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물 기반 소화제를 포함해 여러 진화제를 실험하고 있으며, 상용화를 위한 막바지 검증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소화기 개발을 진행 중인 윤성훈 중앙대 융합공학과 교수는 “현재 물을 포함한 다양한 진화제를 적용해 개발하고 있다”며 “내년 중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 이륜차#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배터리 전용 소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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