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채용 특혜 의혹과 관련 감사원이 직무감찰을 벌인 것은 선관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선관위가 감사원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청구에 대해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28일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2025.02.28.[과천=뉴시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 아들에게 관사를 특혜 제공한 사실에 대해 검찰에 수사요청된 뒤에야 “김 전 총장 지시가 있었다”며 기존의 허위 진술을 번복하는 소명서(자수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 직원들은 김 전 총장에 대한 선관위 자체 감사와 감사원 감사 초기에는 “남는 관사 1채를 인천에 배정한 것”이라며 김 전 총장 지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선관위는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 사무총장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나 규정위반이 없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특혜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그런데 이후로도 2년 넘게 허위 진술을 유지하던 이들이 막상 수사선상에 오른 뒤에야 돌연 자수서를 내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법조계에선 “선관위 셀프 감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란 지적이 나온다.
● 수사요청된 뒤에야 “사실은…”
3일 감사원의 ‘선관위 채용 등 인력관리 실태’ 감사보고서 등에 따르면 중앙선관위의 관사 업무 담당자였던 A 씨는 지난해 10월 감사원에 A4용지 2장 안팎의 소명서를 제출했다. 그가 기존에 했던 진술은 거짓이었고 사실은 상급자인 과장 지시를 받아 김 전 총장 아들을 위해 인천선관위의 관사를 한 채 늘려줬다는 자수서 성격의 내용이었다. 강화군에서 일하던 김 전 총장의 아들은 2020년 인천선관위에 특혜채용됐고 이후 선관위 내부 규정상 전보 대상이나 관사 제공 대상이 아닌데도 인천선관위로 자리를 옮겨 관사까지 제공받은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났다.
A 씨는 2020년 12월 중앙선관위에서 관사 업무 담당자를 지내면서 김 전 총장 아들을 위해 부당하게 인천선관위 몫의 관사 한 채를 늘려줬다는 의혹을 받는 실무진이었다. 그는 2022년 김 전 총장 아들 특혜 의혹에 대한 선관위의 자체 감사 당시에는 “경북선관위가 청사를 이전해 여유 관사가 있었다”며 부당한 특혜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상급자였던 B 과장도 같은 진술을 했다. 이 내용은 선관위가 당시 공개한 자체 감사 결과에 그대로 담겼고, 이후 김 전 총장은 감사원에서 아들을 둘러싼 각종 특혜 의혹에 대해 “주변사람들이 과잉 충성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김 전 총장으로부터 관사 제공 관련 지시를 받지 못했다던 A 씨 등은 지난해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돌연 소명서를 냈다. 그는 소명서에서 기존 진술은 거짓이라고 밝히면서 “(상급자인) 과장의 지시로 인천선관위에서 관사 배정과 관련된 연락을 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김 전 총장 아들에게 관사를 주기 위해서 중앙선관위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실을 인정한 것.
이에 감사원은 선관위 직원들을 다시 불러 원점에서 조사했다. 이과정에서 김 전 총장이 2020년 12월 아들의 인천선관위 전입을 앞두고 중앙선관위의 담당 과장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관사를 추가로 배정해줄 방법을 문의했고, 실무진들이 ‘인천선관위의 기존 원룸형 관사를 투룸으로 늘리는 방안’ 등이 담긴 보고서 등을 작성해 김 전 총장에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총장이 “다른 지역 관사를 조정해 보고하겠다”는 실무진에게 “인천에 어떻게든 하나 해달라” “무조건 1채 했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B 과장을 비롯한 선관위 직원들은 “경북선관위 이전으로 남는 관사가 생겨 배정한 것”이라는 기존 진술에 대해서는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를 받으면서 개발한 논리”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선관위의 자체 특별감사를 앞두고 특혜 채용 의혹 등에 관련된 직원들 사이에 ‘말맞추기’ 등이 있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 “블라인드 채용”이라더니 메신저 기록 제시하자 진술 번복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연루된 선관위 직원들이 선관위 자체 감사를 앞두고 ‘말맞추기’ 등 증거 인멸에 나섰던 사례도 감사원 감사에서 적지 않게 확인됐다. 서울선관위 과장 C 씨는 2023년 5월 당시 서울선관위 상임위원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연루돼 선관위의 감사를 받게 되자 실무를 담당했던 계장에게 “면접 위원들에게 가족관계를 가린 정보를 제공했다고 하라”고 허위 진술을 지시했다. C 씨는 선관위 자체 감사 과정에서 본인도 “블라인드 채용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당시 서울선관위가 면접위원들에게 인사기록카드의 가족관계란을 삭제하고 제공했다”는 이 내용은 중앙선관위가 같은해 공개한 자체감사 결과 보도자료에도 그대로 적혔다. 이후 C 씨는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인사기록카드 등 주요 증거가 든 서류함을 “갈아버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감사원이 디지털포렌식 등을 통해 당시 서울선관위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들을 복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서울선관위 실무자들이 면접위원들의 평가 점수를 정리한 엑셀시트 초안과 이후 내정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조작한 최종 평가점수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이후 서울선관위의 관계자들은 감사원에서 ‘말맞추기’를 비롯한 증거인멸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녀 특혜채용 혐의로 수사요청 대상에 포함된 경남선관위의 D 과장도 선관위 자체 감사 직전에 동료에게 전화해 “내가 자녀의 채용 응시 사실을 서류전형 이후에 알았다고 진술하라”고 시켰다. D 과장 자녀 특혜 채용에 관여한 동료 직원들은 선관위의 자체 감찰 조사를 받은 뒤 “면접위원 변경 과정에서 D 과장이 자녀의 경력채용 응시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게 좋겠다”며 구체적인 거짓진술 내용까지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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