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26개동 첫 ‘싱크홀 지도’ 절반이 안전도 낮은 4, 5등급[히어로콘텐츠/크랙上-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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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싱크홀 안전지도’ 만들어보니
3월 명일동서 폭 18m 싱크홀 발생
서울시, 작년 만든 자료도 비공개
본보-지하안전協, 서울 땅밑 분석
싱크홀 68%가 4, 5등급서 발생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올해 3월 서울 강동구 명일2동에서 도로가 꺼지며 오토바이 운전자가 숨졌다. 싱크홀(땅 꺼짐) 크기는 폭 18m, 깊이 20m로 서울에서 발생한 싱크홀 중 최대 규모였다. 옆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충희 씨는 사고 두 달 전 주유소 바닥에서 실금을 처음 발견했다. 인근에서는 지하철 9호선 굴착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씨는 균열 틈새 폭이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1cm까지 커지는 것을 보고 공사 관리자들을 불러 “안전한 거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우리 공사 때문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하에 있는 기름 탱크의 안전이 우려됐다.

최근 잇단 싱크홀 사고가 인명 피해로 이어지자 ‘내 발밑이 안전한지’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해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완성했다고 발표했지만 명일2동 사고 이후에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올해 3월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2동에서 발생한 폭 18m, 깊이 20m의 대형 싱크홀.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숨지고 카니발 운전자 1명이 다쳤다. 이 지역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에서 안전도 4등급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4월부터 석 달에 걸쳐 한국지하안전협회와 함께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었다. 사람과 기업, 각종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에서 싱크홀이 발생할 경우 다른 지역보다 인명, 재산 피해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동별로 △지반 △지하수 △지하철 △지반침하 이력 △노후 건물 분포 정보를 분석해 안전도를 1∼5등급으로 분류했다. 1등급에 가까울수록 안전하다.

그 결과 서울 전체 면적(605.200km²)의 50.2%인 303.930km²는 안전도가 낮은 4, 5등급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총 426개 행정동 중 208개로 특히 한강 주변에 집중됐다. 과거 서울에서 벌어진 싱크홀 사망 3건, 깊이 5m 이상 대규모 싱크홀 사고 3곳을 지도와 비교해 보니 4, 5등급 지역이었다. 싱크홀 현황 집계가 시작된 2018년 이후 올해 5월까지 서울에서 총 132건의 싱크홀이 생겼는데 68.2%(90건)가 안전지도상 4, 5등급 지역인 것으로 확인됐다. 싱크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이 실제 사고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보기
https://original.donga.com/2025/sinkhole1

기술 분석을 맡은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장은 “4, 5등급 지역은 지반 침하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런 곳에서 굴착 공사를 할 때 엄격한 안전조치를 하지 못하면 대형 침하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말하면, 5등급 지역이라도 이제부터 안전 확보에 필요한 적정 공법을 쓰고 감독, 감리, 시공 안전조치를 철저히 한다면 싱크홀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회장은 “싱크홀은 초기의 작은 사고 징후에도 민감하게 대응해야 큰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1동-압구정동-여의동… 싱크홀 안전 4, 5등급 한강벨트 많아
‘서울 싱크홀 안전지도’ 분석해보니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4번 출구. 지하철 공사 현장 주변의 보도블록이 군데군데 내려앉거나 깨져 있었다. 울퉁불퉁하게 내려앉은 바닥 곳곳에는 새벽부터 내린 비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옆 시멘트 바닥에는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균열이 수 m 이어졌다. 화단, 환기구 등 구조물 곳곳에는 균열을 보수한 흔적이 보였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과 전문가들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는 서울 426개 동의 지반 상태 등을 분석했다. 이 중 국회, 지하철역, 한강공원 등이 있는 영등포구 여의동은 안전도 1~5등급 중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은 33개 동 중 한 곳이었다. 지반, 지하수, 지하철, 노후 건물 분포에서 4등급을, 지반침하 이력에서 5등급을 받았다.

● 5등급 여의동 가보니 굴착 주변에 균열

여의동은 종합등급 5등급을 받은 33개 동 중 다섯 가지 평가 영역에서 모두 4등급 이하를 받은 유일한 동이었다. 지하안전정보시스템(JIS)에 싱크홀 사고가 취합되기 시작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여의동에서는 6번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서울의 동들 중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싱크홀이 한번 일어난 곳 주변에서 다시 일어날 확률이 높다며 주의 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싱크홀이 한번 발생한 위치에서 반경 100m 이내에 또 다른 싱크홀 혹은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이 생길 확률이 67%였다. 100곳 중 67곳은 주변에 또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달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여의도역 4번 출구 인근의 보도블록이 여기저기 갈라지거나 깨져 있다. 여의동은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에서 안전도가 가장 낮은 5등급으로 나타났다. 이 지점은 지하철 굴착 공사 현장과 불과 20m 떨어져 있었다. 히어로콘텐츠팀
히어로팀은 여의동 일대를 전문가와 직접 살펴봤다. 여의도역 4번 출구에서 약 20m 떨어진 지점 지하에는 5호선, 9호선이 지나간다. 그 아래는 신안산선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연말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GTX-B 노선 공사도 시작될 예정이다. 지하철은 공사 과정뿐 아니라 공사 후에도 지하수를 대량으로 빼내 지반이 약해지기 쉽다. 지하철역이 밀집한 곳일수록 고층 건물이 몰려 있다. 고층 건물 역시 지하를 깊이 파내고 지은 구조물이라 건물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계속 지하수를 뽑아내야 한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동행한 변광욱 한국지하안전협회 부회장은 “보도블록 균열은 지하 공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공사장 주변에서 물이 빠져나간 공간을 흙이 메우면 땅이 점점 가라앉는다. 시간이 지나면 밑으로 내려앉아 지표면의 보도블록과 흙 사이에 빈틈이 생긴다. 그 지점에 하중이 집중되면 보도블록이 깨지거나 금이 간다. 변 부회장은 “한강과 바로 접한 여의도 지반은 모래와 흙이 뒤섞여 무르다”며 “이렇게 지반이 약한 곳에서는 굴착 공사 구간으로부터 반경 200m 주변 땅까지 침하될 수 있다”고 했다.

● 삼성1동 싱크홀 빈번, 압구정동 노후 건물 밀집

강남구 삼성1동과 압구정동도 안전도가 낮은 5등급으로 나타났다. 삼성1동은 지반, 지반침하 이력 항목이 5등급이었고 나머지 3개 항목은 2~4등급이었다. 압구정동은 지반, 노후 건물 분포 항목에서 5등급을 받았고 나머지 3개 항목은 모두 3등급이었다. 압구정동은 지은 지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가 많아 지하 노후 매설물이 싱크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달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삼성역 5번 출구 근처에 경계석이 깨져있다.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공사장과 인접한 이곳은 보도블럭이 깨지거나 계단이 침하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히어로콘텐츠팀
삼성1동의 경우에는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대형 굴착 공사다. 22일 오후 삼성역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인도 경계석과 보도블록에 균열이 보였다. 인도가 물결치듯 휘어지며 코엑스 앞 경계석이 깨져 있었고, 나무 울타리는 기울어져 있었다. 지하철역 입구의 돌 난간을 떠받치는 바닥도 내려앉아 임시로 아래 타일을 괴어 놓은 상태였다.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영동대로 공사장은 지난해 정부 특별점검에는 포함됐는데 굴착이 더 진행된 올해 점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며 “면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4, 5등급 지역서 굴착 공사 부실 관리 땐 위험

서울 426개 동 중 싱크홀 안전도 1등급을 받은 곳은 관악산과 서울대 관악캠퍼스가 있는 관악구 대학동뿐이었다. 2등급 지역도 관악구에 8개로 가장 많았다. 그 외 북한산(강북구 우이동), 안산(서대문구 홍은1동 등) 등의 행정동이 주로 안전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도 4, 5등급 지역이 ‘당장 땅이 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싱크홀은 지하 매설물 손상, 굴착 공사 안전 부실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안전도가 낮은 4, 5등급 지역에서 이런 인위적인 요인까지 가해지면 싱크홀이 생길 확률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안전지도를 통해 위험 지역을 미리 선별하고, 그 지역의 굴착 공사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인명, 재산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도심 싱크홀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시민 불안은 커지는데 정부와 서울시는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히어로팀은 전문가들과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24일 오전 3시 온라인 공개됩니다.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보기
https://original.donga.com/2025/sinkhole1


히어로콘텐츠팀
▽ 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 사진: 홍진환 기자
▽ 편집: 이소연 기자
▽ 그래픽: 김충민 기자
▽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

◇안전도 분석에 활용한 공공데이터=지질분포(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시 지질도), 충적층·토사층 두께(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가지반정보통합DB), 지하수위(서울시 지하수 측정연보), 지하수위저하(서울시 지하수 보조관측망 변동분석), 토양침투성능(국립농업과학원 토양분포도), 지하철 노선분포·정거장 밀집도(서울시지하철노선도), 지반침하이력 밀집도 및 규모(지하안전정보시스템), 30년 이상 노후건물 분포도(2040 서울도시기본계획)

◇지도 제작 기술자문=△총괄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 △지질특성분석 정경문 정찬규 천명남(이하 협회이사) △수리특성분석 유재성 우상백 구본민 △지하공간개발현황분석 변광욱 장우선 △지하공동발생현황분석 김창동 김한응 △지반침하이력분석 남준희 김승진 △자문 안상로 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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