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허위 테러예고 기승… 경찰 올해 3000건 헛출동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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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신고 2년새 1000건 이상 늘어
경찰 “손해배상 청구까지 적극 검토”

5일 오후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해당 백화점 내부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올라와 경찰특공대 등이 폭발물 수색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최근 백화점과 공연장, 초등학교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폭탄을 설치했다”는 허위 협박이 잇따르면서 경찰·소방의 ‘허탕 출동’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의 허탕 출동은 최근 2년 새 1000건 이상 늘었고, 올해만 7월까지 3000건 가까이 접수돼 100분에 1건꼴이었다.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허위 신고로 인한 출동은 2022년 4235건에서 지난해 5432건으로 28.3% 증가했다. 올해도 7월 말 기준 2933건으로 하루 평균 13.8건꼴이었다.

허위 테러 신고가 접수되면 시민 대피로 인한 불편이 클 뿐 아니라 경찰특공대와 화재진압차, 구급차가 동시에 출동해 큰 비용이 허비된다. 도움이 필요한 시민의 구조가 늦어져 실제 위급 상황 대응이 지연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짜 협박범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배상 판결을 받은 사례는 최근 3년간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협박범에 대해)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까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테러 허위신고에 소방서 1개 총출동 “진짜 위험 대응 못할수도”


“백화점에 폭탄 설치” 거짓신고에… 소방차 37대-경찰 등 239명 동원
가짜 협박범에 배상판결 1건뿐
“강력 처벌위한 법개정 시급” 지적… 출동 여부 가이드라인도 추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허위 신고 땐 소방서 내근직까지 전원 투입됐습니다. 소방서 하나를 통째로 현장에 옮겨 놓은 수준이었죠.”

서울소방재난본부 소속 소방관 A 씨는 5일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을 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3시간 동안 경찰 인력 100여 명이 폭발물 수색과 현장 통제에 투입됐고, 소방에선 소방차 37대와 대원 139명이 출동했다. 혹시 모를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긴급구조지원단 구성도 발령됐다.

● “신고 한 번에 소방서 1개를 옮기는 수준”

소방 긴급구조지원단 구성은 현장을 일종의 작은 소방서로 만드는 조치다.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내근직까지 모두 현장으로 보내 현장 대처와 유관기관 협력, 언론브리핑 등을 담당한다. 그러나 추적 결과 이 협박 글은 중학교 1학년생이 장난으로 올린 것이었고, 행정력만 고스란히 낭비됐다.

정작 위급한 시민이 구조되지 못할 뻔한 아찔한 장면도 이날 있었다. 백화점에 대규모 인력이 묶여 있던 사이 을지로 일대에서 “정체불명의 연기가 난다”며 신고가 들어왔지만, 인력이 부족해 인근 소방서가 대신 출동한 것이다. A 씨는 “현장 관할인 중부소방서가 거의 마비된 상태라서 어쩔 수 없었다”며 “만약 큰 화재였다면 대처가 늦어 피해가 불어날 뻔했다”고 했다.

10일엔 아이돌 그룹 공연이 예정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허위 팩스로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관객 2000명이 대피했다. 15일에는 한 고등학생이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한 유튜브 생방송에 “(촬영 중인) 옛 경북 안동역 광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댓글을 달아 EOD를 비롯한 경찰 인력이 수색을 벌였다. 둘 다 허위 글이었다.

● 시민 기업도 혼비백산… 관련 법령은 걸음마 수준

문제는 피해가 경찰·소방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허위 신고 피해를 본 기업도 손해가 막심하다.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매출은 1조1921억 원. 단순 계산만 해도 하루 영업 중단으로 약 32억 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영업 중단 시간, 이로 인한 소비자 감소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허위 신고로 5억∼6억 원의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도 함께 불편을 겪는다. 10일 올림픽공원 테러 위협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이돌 그룹 팬 조모 씨는 “어렵게 티켓을 구해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 혼비백산해 공연을 어떻게 봤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파급력이 큰 범죄지만, 배상 체계는 사실상 부재하다. 실제 최근 3년간 가짜 협박범에게 손해배상을 물린 판례는 2023년 프로배구 선수단 숙소에 칼부림하겠다고 협박한 사건(1200만 원) 1건뿐이다. 경찰, 소방 등 역시 허위 신고로 인한 ‘허탕 출동’에 대해 제대로 된 수당마저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측도 경찰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허위 신고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엔 허위 신고에 대해 ‘공중협박죄’가 신설돼 최대 징역 5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달 법원 첫 판결에서 벌금 600만 원 선고에 그치는 등 억지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신고의 허위 가능성을 판별해 출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경찰특공대 (출동 여부를 가리는)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25일 발생한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폭발 신고에는 ‘허위임이 명백하다’며 수색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허위 신고 범죄자에게 ‘악행에 대한 본인의 손해가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며 “형사적, 민사적인 책임이 확실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법안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위협박#폭발물 신고#허탕 출동#공중협박죄#사회적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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