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 마비시킨 ‘디지털 협박’…법적 처벌 가능할까
사칭당한 일본인 변호사 “우려스럽다”
서울 곳곳에 학교와 공공기관을 멈춘 디지털 협박 사건이 발생했다. 이돈호 변호사는 국제 공조와 제도적 보완으로 범죄에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SNS)
서울 시내 곳곳, 학교와 공공기관이 갑자기 멈췄다. 폭발물은 없었지만, 팩스와 이메일로 날아든 ‘디지털 장난’ 때문에 시민들의 하루가 얼어붙었다.
“서울 곳곳에서 학생들에게 황산 테러를 하겠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
“제주항공 무안공항 사고는 우리들의 소행이다.”
“에버랜드에 폭약 4만 개 설치했다.”
초등학생 학부모 A씨는 “장난이어도 문제고, 아니어도 문제다. 최근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 진짜 일어날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 일본 변호사 ‘가라사와 다카히로’ 사칭
왼쪽은 일본 변호사 가라사와 다카히로 , 오른쪽은 그의 저서
이번 사건의 발신인 이름은 ‘가라사와 다카히로’. 실제 존재하는 일본 변호사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다.
가라사와 변호사의 저서에 따르면, 과거 한 커뮤니티에서 공격받던 학생을 변호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한 범죄가 무려 13년간 이어지고 있다.
이 ‘가라사와 발 협박’은 2023년부터 한국으로 번졌고,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2년간 48건 발생했다.
가라사와 변호사 측은 본지 질문에 “한국에서까지 이런 사건이 벌어져 우려스럽다”며 “취재해줘서 감사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다만 별도의 공식 성명은 내지 않았다.
■ 법망 밖에서 뛰노는 ‘장난 테러’
사진=게티이미지
노바법률사무소 이돈호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공중협박죄, 업무방해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여러 법적 쟁점이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폭발물이 실제로 없더라도 학교 수업 중단, 민원 업무 마비 등 사회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법적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발신지가 일본이기 때문에 가해자 특정이 쉽지 않다. 국내법만으로는 수사·처벌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해외에 있을 경우 수사가 어렵고, 설령 실형이나 벌금형이 내려져도 집행이 쉽지 않다.
이 변호사는 “고소인이 해외에 있으면 변호사가 대체 진술을 할 수 있지만, 피의자의 경우 조사가 쉽지 않다”며 국제 사건 처리의 복잡함을 강조했다.
■ ”나이가 어릴수록 감경되는 경향도“
사진=게티이미지
범행자가 미성년자라면 촉법소년 규정 때문에 형사 처벌은 어렵지만, 나이가 있으면 실형 선고가 가능하다.
이 변호사는 “신세계 백화점 폭탄 사건 때도 범인이 미성년자라 형사 처벌이 제한됐다”며 “특히 장난 전화 같은 범죄는 나이가 어리면 감경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 국제 공조-제도적 보완, 대응의 열쇠
사진=게티이미지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제 사이버 범죄 공조 시스템과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할 때처럼 충분한 인력과 예산, 국제 공조가 있으면 대응이 가능하다”며 “VPN 같은 익명화 도구를 악용한 범죄 추적을 위해 업체가 수사 목적에 한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장난전화에서 시작된 디지털 협박은 이제 사회적 피해를 불러오는 범죄로 진화했다. 지속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공조와 법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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