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 식단관리 이걸로”…정치인 불러내 돈벌이하는 유튜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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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앉혀놓고 화장품-흑염소 광고
“팬덤 생각하면 출연 거절 쉽지 않아”

강성 지지층이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들이 정치인들을 출연시킨 뒤 광고에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권력이 된 정치 유튜브가 규제 공백을 틈타 정치인들을 수익 창출 수단으로 동원하는데도 정치인들은 강성 팬덤의 눈치 때문에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구독자 수가 63만 명인 친여 성향 유튜브 ‘박시영TV’에는 이달 2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주제로 출연했다. 진행자는 김 원내대표와의 대화 도중 한 기능성 화장품 광고에 나섰다. 김 원내대표의 모습을 비추며 2분여 동안 화장품에 대해 설명한 것. 구독자가 131만 명인 친야 성향 유튜브 ‘고성국TV’에도 같은 날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출연했는데 20여 분간 대담 내내 흑염소 진액, 당뇨·혈당·기억력 개선을 내세운 건강식품 등 하단 광고가 이어졌다.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정치인을 광고에 동원하는 것은 방송 광고와 달리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초선 의원은 “정치 유튜브는 강성 지지층들에게 얼굴을 알리는 창구”라며 “출연자 의사와 무관하게 유튜브 광고에 동원되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팬덤을 생각하면 출연 제안을 거절하긴 쉽지 않다”고 했다.

정치인 불러놓고 화장품-갈비-산삼 광고… 정치권력이 된 유튜버


“대표가 말한 엄마 마음은 화장품”… 與원내대표 출연시켜 노골적 광고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쥐락펴락’… “지지층 확보” 정치인들 외면 못해
“유럽처럼 특별법으로 규제를” 지적

“피부 진정에는 언제나 OOOO(화장품 명). 김병기 원내대표님, 엄마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엄마의 마음은 OOOO을 챙겨 주는 겁니다. OOOO 엄마의 마음 우리 아이들에게 뿌려 주세요.”

이달 2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출연한 여권 성향 유튜브 채널 ‘박시영TV’에서 진행자는 한 기능성 화장품을 꺼내 들며 이 같은 광고를 했다. 주제는 최근 여론이 집중된 ‘검찰 개혁’이었는데 이 같은 광고가 2분가량 이어지는 동안 김 원내대표가 멋쩍게 웃는 장면이 포착됐다.

최근 수십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가진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정치인들을 출연시킨 뒤 광고에 노골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을 구독자로 거느리며 영향력이 커진 유튜브 채널들이 정치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화장품부터 갈비, 산삼까지 광고 동원돼

구독자 114만 명의 여권 성향 유튜브 채널 ‘새날’에서는 2일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영상 등을 주제로 출연했다. 최 위원장의 옆에 세워진 최 위원장 상반신 크기의 스크린에는 최고급 LA갈비, 김치, 산양산삼 등 광고가 이어졌다.

구독자 84만 명의 ‘이동형TV’도 지난달 민주당 김성회 의원이 출연한 가운데 건강식품 관련 광고가 이어졌다. 진행자는 김 의원의 지역구(경기 고양갑)를 언급하며 “그 좋은 동네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정치를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OOOOOO(상품명). 식단관리가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올 5월 출연했던 구독자 수 42만 명의 야권 성향 유튜브 채널 ‘멸콩 TV’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 관련 도서에 대한 하단 광고가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같은 당 김민수 최고위원이 출연한 같은 채널의 영상에서도 건강식품 광고가 이어졌다.

정치인들이 해당 상품을 언급하는 등 직접 광고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회법은 국회의원이 직무 외 영리 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유튜브 채널이 정치인 출연을 통해 시청자를 끌어모은 뒤 대화 도중 직간접 방식으로 광고를 해 수익을 올리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국회 관계자는 “유튜브에 나오는 광고들은 최소한의 심의도 거치지 않아 신빙성도 약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런 광고에 국회의원이 노출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 규제 공백 틈탄 유튜브 권력에 편승

정치인들이 유튜브 광고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강성 지지층이 즐겨 보는 일부 유튜브 채널들이 사실상 권력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김어준 씨의 친여 성향 유튜브 채널을 겨냥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저는 그분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정치인 입장에서 채널이 좋든 싫든 일단 유튜브를 통해 강성 지지층에게 어필하고 팬덤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취지다.

특정 진영의 지지가 강한 대형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면 후원금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는 경험을 해본 정치인들은 더욱 유튜브 채널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한 민주당 의원은 “대형 유튜브에 출연했더니 기존에 3분의 1밖에 안 찼던 후원금이 3시간 만에 마감돼 깜짝 놀랐다”며 “유튜브의 힘을 직접 느끼고 나서는 출연 제의를 거절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다.

유튜브 광고에 대한 규제 공백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해외 플랫폼인 유튜브에 대한 규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고, 이를 정치 유튜브 채널들이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참고해 한국형 유튜브 특별법을 만들어 강제성과 구체성을 부여한다면 무분별한 광고 등에 대한 필터링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정치 유튜브#광고 논란#유튜브 규제#디지털서비스법#강성 지지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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