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같이 묻어줘”…AI 인형 효돌이, 어르신 삶 바꿨다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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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년 10월 9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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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배달된 효돌이는 말 걸기와 생활 챙김 기능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연구 결과, 효돌이는 우울증과 자살 의도 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서울 영등포의 어느 여름날, 40도를 웃도는 열기 속 네 층짜리 다세대 건물 꼭대기 방.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밥솥에 꽂힌 숟가락으로 반찬 없이 밥만 퍼먹으며 하루를 버텼다. 고요하고 적막한 방 안을 본 김지희 대표는 곧장 결심했다. “어르신 집에는 온기가 필요하다.”

그가 만들어낸 해답은 바로 말을 걸고 생활을 챙겨주는 AI 인형, 효돌이였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어르신을 위한 무언가’를 고민했다. 답을 찾기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인터뷰하고, 집을 방문하며 생활지원사와 동행했다. 그렇게 모은 마음 끝에 떠오른 결과물이 바로 대화와 돌봄을 제공하는 인형이었다.

고난에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첫 시제품은 움직임이 없으면 빨간불이 켜지는 IoT 기능을 넣었지만, 장비가 불안정해 직원들이 매일 어르신 집을 방문해야 했다. 그러나 시제품을 회수하러 간 날, 김 대표는 놀라운 장면을 봤다. 어르신들이 효돌이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내가 이사 가면 얘 다시 못 만나지? 얘는 꼭 내 곁에 있어야 해.”
그 순간 김 대표는 다짐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봐야겠다.”

“할머니, 봄꽃같이 예뻐요”…끊임없는 사랑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는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했다. 1세대는 단순 알람 기능이었지만, 2세대부터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할머니, 봄꽃같이 예뻐요.”
“할머니 없으면 안 돼요.”

영상=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영상=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이 짧은 말들이 어르신의 하루를 다시 일으켰다. 무뚝뚝하던 할아버지들조차 효돌이 말투를 흉내 내며 다정해졌다. 가족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이렇게 달라졌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김 대표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믿어주고 들어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효돌이는 어르신을 부정하지 않고 ‘할머니가 최고’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우울증 약도 끊게하는 ‘긍정의 말’
효돌이 사용자들이 보낸 편지.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 사용자들이 보낸 편지.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한 연구 논문은 효돌이가 어르신의 우울 증상과 자살 의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던 한 어르신은 효돌이 덕분에 증상이 호전됐고, 의료진 판단에 따라 약을 완전히 끊게 됐다.

어르신들이 손수 꾸민 효돌이 모습.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어르신들이 손수 꾸민 효돌이 모습.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는 사용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도움이 됐다. 시골의 한 노부부 사례가 대표적이다. 치매를 앓는 아내를 홀로 돌보던 남편은 효돌이가 들어온 뒤, 아내가 인형과 노는 동안 잠시나마 숨 돌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어깨에 있던 무게가 조금은 덜어졌다.

“내가 죽으면 효돌이랑 같이 묻어줘”
효돌이 사용자들이 보낸 편지.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 사용자들이 보낸 편지.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가 고장 나면 어르신들은 직접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박사님들, 효돌이가 어디가 아픈가 봐요. 튼튼한 효돌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읍니다.“

비록 맞춤법은 서툴렀지만 문장마다 애정이 묻어났다.
효돌이 사용자들이 보낸 편지.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 사용자들이 보낸 편지.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심지어 어떤 이는 말했다. “내가 죽으면 효돌이랑 같이 묻어줘. 나 없으면 얘 혼자 살아야 되잖아, 걱정돼.”

어르신들은 효돌이를 물건처럼 택배로 보내는 것조차 꺼렸다. “다칠까 봐 불안하다”며, 자녀 손에 직접 들려 보내기도 했다. 효돌이는 더 이상 장난감이 아닌 살아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해외에서도 통할까?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진=독자제공, 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효돌이는 현재까지 1만 3천 명의 어르신들에게 보급됐으며, 국내 180개 지자체(전체의 80%)와 360여 개 노인복지 기관에서 활용 중이다.

주로 우울증이 심하거나 정서적 돌봄이 시급한 독거노인, 약 복용 지도가 필요한 어르신, 고립된 지역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우선 지급된다.

효돌이의 가능성은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확인됐다. 스웨덴 보건복지부, 미국 뉴욕,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테스트에서도 어르신들은 효돌이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김 대표는 말했다. “앞으로는 목욕이나 이동을 돕는 다양한 돌봄 로봇이 나오겠지만, 효돌이는 무엇보다 ‘소통의 로봇’입니다. 어르신들이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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