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왼쪽)이 11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 빙상훈련센터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열린 2025 하얼빈 겨울 아시안게임 남자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확정한 뒤 함께 레이스를 펼친 박상언(가운데), 정재원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하얼빈=AP 뉴시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 이승훈(37)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쇼트트랙 선수였다. 2009년 2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겨울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이승훈은 쇼트트랙에 출전해 3관왕을 했다.
쇼트트랙 유망주로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출전을 노렸던 그는 그해 4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잠시 실의에 빠졌던 그는 충격을 이겨내고 곧바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하얼빈에서 역대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딴 한국 선수가 됐다.
이승훈은 11일 중국 하얼빈 헤이룽장빙상센터에서 열린 2025 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에 정재원(24), 박상언(23)과 함께 출전했다. 그리고 3분47초99를 기록하며 중국(3분45초94)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승훈은 2017 삿포로 대회 때까지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총 8개(금 7개, 은메달 1개) 따낸 상태로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이승훈 이전에도 쇼트트랙 김동성(45·금 3개, 은 3개, 동메달 2개)과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46·금 4개, 은 3개, 동메달 1개·이상 은퇴)이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8개를 따낸 적이 있었다. 이승훈은 이날 9번째 메달을 따내며 한국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간판으로 통하던 두 선배를 모두 제치고 겨울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가장 많이 따낸 한국 선수가 됐다.
이승훈은 “2009년 겨울 유니버시아드 때만 해도 쇼트트랙으로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 딸 생각만 했지 이런 일들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선발전 탈락하고 몇 개월 있다가 밴쿠버 올림픽에 간 거였으니…”라며 “그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시절 운동했던 기억이 지금은 도움이 많이 된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이겨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대표팀 탈락 6개월 뒤인 2009년 10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리고 2010년 2월 열린 밴쿠버 올림픽 때 남자 1만 m에서 금, 5000m에서 은메달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승훈은 2022년 베이징 대회 때까지 네 차례 올림픽에 나가 총 6개의 메달(금 2개, 은 3개, 동메달 1개)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 가운데 이승훈보다 겨울 올림픽 메달이 많은 선수도 없다.
이승훈은 원래 2022 베이징 올림픽을 마치고 은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대회까지 5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바라보고 있다. 이승훈은 “네덜란드에서 현지 선수들과 훈련하며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나보다 스케이트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계속 스케이트를 타더라”며 “‘나도 이렇게 더 하면 되겠다’ 싶었다. (언제까지 선수로 뛸지) 제한을 두지 말고 타고 싶을 때까지 타자는 생각이다. 스케이트는 겨울 취미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날 대기록을 세운 후에도 “사실 이제는 덤덤하다. 스케이트를 타는 그 자체가 좋다”며 웃었다.
이제 빙판 위 경쟁자들은 모두 2000년대생으로 1988년생인 이승훈과 띠동갑이 기본이다. 그래도 한국 장거리 1인자는 여전히 이승훈이다. 이승훈은 ‘아시안게임은 이번이 마지막이냐’는 말에 “베이징 올림픽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며 웃은 뒤 “또 모른다. 실력 있는 사람이 (국가대표로)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남자 1000m에서 차민규(32)가 은, 여자 1000m에서 이나현(20)이 동메달을 추가했다. 이나현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100m(금), 500m(은), 1000m(동), 팀 스프린트(금메달)에 나와 전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박지우(27)-김윤지(22)-정유나(20)는 여자 팀 추월에서 동메달을 합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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