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걸 다 분석한다. 놀랍다. 집요하다. 목표를 설계하고 실천하는 데는 도사인 것 같다. 꾸준하다. 중간에 흐지부지하지 않는다. 나날이 경쟁력이 좋아지는 일본 농구와 일본농구협회(JBA)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일본 여자 농구는 두말할 것 없고, 우리가 ‘교과서 농구’만 한다고 평가절하했던 남자 농구도 도쿄올림픽과 2023 FIBA(국제농구연맹) 월드컵, 2024 파리올림픽을 거치면서 훌쩍 성장했다. 일본 야구나 축구의 저력을 보는 것 같다.
2019 FIBA 월드컵 당시 FIBA 세계 남자 농구 순위 42위이던 일본은 21위까지 올라갔다. 현재 53위인 한국을 멀찌감치 추월했다.
지난달 28일 JBA가 내놓은 ‘2024 일본 농구 대표팀 기술보고서(테크니컬 노트)’를 보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술 분석 조직(테크니컬 소위원회 7명과 제작팀 4명, 전담 기술 직원 2명)을 가동시킨 것도 놀라운데 공식 기록에도 없는 부분을 지표화한 것이 더 기가 차다.
보고서는 2023 월드컵과 파리올림픽에서 잘 된 부분과 안 된 점을 확인하고, 세계 강호와 스타들 플레이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파악해 일본 남자 농구가 추구해야할 세밀한 전술 방향과 틀을 작정하고 다시 제시했다.
톰 호바스 현 감독의 혁신 방향과 맞물려 있는 방향과 틀은 미국이나 유럽 강호에 신체 조건과 기술에서 밀리더라도 경기를 이기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틈새 능력을 더 구체화했다. 나중에 어떤 감독이 대표팀을 맡더라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자산 가치 높은 교재다. 대표팀에 들어가길 원하는 유망주부터 대표팀 터줏대감도 안 볼 수 없는 지침서 같다. 우리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니 부럽다.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남자 농구는 2023 월드컵 이후 3가지 목표 향상에 매달렸다. 속공 횟수를 늘리고 실책(턴오버)를 줄이며 수비 리바운드를 더 많이 따내는 경기 운영 능력 향상에 집중했다. 호바스 감독 친구이자 NBA 선수 출신 분석가로 일본 농구 대표팀 고문을 맡고 있는 딘 올리버가 분석해 제안한 것이다.
그 결과 턴오버를 확실하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3 월드컵 5경기에서 일본은 턴오버 69개를 저질렀다. 경기당 평균 13.8개로 32개팀 중 18위였다. 세계 강팀과 비교해 공격 기회를 2~3회 날렸다고 분석했다. 테크니컬 소위원회에서는 실책 69개 패턴을 일일이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플레이에서 실책이 많았는지 분석한 결과 드리블 돌파하면서 패스할 때, 페인트존에서 바운드가 아닌 다른 형태의 패스를 할 때, 픽 앤 롤 상황에서 공을 가진 가드가 스크린을 걸고 롤을 하는 선수에게 짧은 패스를 할 때 등 3가지 상황에서 실수가 가장 많았다. 팀에게 이 정보는 피드백이 됐다.
파리올림픽 조별리그 3경기에서 일본 대표팀 실책은 경기당 평균 10.7개였다. 월드컵과 비교해 3개가량 줄었다. 본선 참가 12개국 중 가장 적었다. 90대94로 분패한 프랑스 전에서도 연장까지 접전을 펼쳤지만 실책은 10개에 불과했다.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은 2024 파리올림픽에서 참가국 중 실책이 가장 적었다. 출처=JBA ● 페인트존으로 한두 걸음 가지 않아 놓친 리바운드를 찾다
5명 전원이 참여하는 속공도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에 확실하게 녹아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023 월드컵에서 일본의 전체 공격 대비 속공 점유율은 20%였다. 32개국 중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 번째로 속공이 많았다. 속공으로 경기당 평균 21.6점을 얻었다.
파리올림픽에서는 속공 비율이 16.8%로 떨어지긴 했으나 미국 남수단 호주에 이어 많이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상대 득점 이후 바로 속공한 횟수가 월드컵 때는 경기당 1.6회였는데 파리올림픽에서 4.4회로 늘었다.
속공 상황에서 3점 슛을 경기당 평균 3.3개 던졌는데 성공률이 45.5%나 됐다. 전체 3점 슛 시도도 경기당 37.3개로 올림픽 참가 팀 중 가장 많았다. 성공률도 39.3%(14.7개 성공)로 미국 브라질에 이어 3번째로 좋았다.
득점 확률이 높은 페인트존 득점은 기대에 못 미쳤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남자 농구 대표팀 공격은 최근 5명 전원이 넓게 움직이면서 기회가 나면 3점 슛을 많이 던지는 경향이 있다. 3점 슛 성공률이 좋아지면서 상대 빅맨을 외곽으로 잘 끌어낸다. 이 틈을 활용해 페인트존 돌파 성공률도 높여 3점 슛과 페인트존 2점 슛을 동시에 살려 보길 기대했는데 파리올림픽에서는 시너지가 잘 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은 페인트존에서 경기당 30.3점을 올렸다. 월드컵에서도 페인트존 득점이 경기당 29.6점이었다. 파리올림픽에서는 16.3점으로 줄었다. 참가 팀 중 최하위였다. 대신 페인트존 바깥 2점 슛 시도가 월드컵보다 늘었다. 3점 슛 성공률이 좋긴 했지만 골밑 돌파는 조별 리그에서 만난 독일, 프랑스 빅맨들 피지컬과 높이 압박을 넘지 못했다고 봤다. 테크니컬 소위원회에서는 조별리그 3경기 페인트존 터치 횟수까지 파악했다. 2023 월드컵에서는 경기당 91.6회 시도해 45.2회 페인트존을 밟았다. 파리올림픽에서는 88. 6회 시도해 41회 터치해 줄었다.
수비 리바운드는 만족할 수 없지만 개선이 이뤄지는 단계라고 진단했다. 수비 리바운드 점유율은 상대가 놓친 슛을 리바운드하는 비율이다. 일반적으로 70%를 평가 기준으로 본다. 파리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 리바운드 점유율을 68.6%로 분석했다. 12개팀 중 9위였다. 2023 월드컵에선 64.6%였다. 테크니컬 소위원회는 2023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 가드들이 수비 상황에서 페인트존으로 한두 발 더 들어가 위치를 잡고 있었으면 림에서 3.5~4m 지점으로 튕긴 긴 리바운드를 몇 개 잡을 수 있었다고 파악했다. 이 때문에 경기에서 4.3점을 더 실점한 것으로 계산했다. 당연히 파리올림픽에선 가드들이 수비 리바운드 때 페인트존 그 지점로 더 깊이 들어가 길게 튀는 리바운드를 잡는 훈련을 반복해 일정 부분 효과를 봤다고 분석했다. 전체적으로 경기 중심 변수로 작용하는 턴오버를 줄이고 리바운드 점유율을 높이며, 2점 슛 효율을 높이는 세부 경기 운영 능력 보완을 숙제로 남겼다.
미국프로농구(NBA) 최고의 센터 니콜라 요키치의 엘보우 지역 패턴 플레이 분석. JBA 알맹이가 알찬 부록 정보도 있다. 앞으로 계속 대결할 상대 스타급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도 습관까지 치밀하게 분석했다. 프랑스의 신장 223cm ‘괴물’ 빅터 웸반야바(샌안토니오)는 포스트업이나 1대1을 할 때 주로 오른쪽으로 진행해 오른손으로 슛을 올려 놓는다는 루틴을 파악했다. 실제 파리올림픽 프랑스 전에서 웸반야마 수비를 전담했던 일본 대표팀 조쉬 호킨슨은 웸반야마를 왼쪽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면서 페인트존 바깥에서 점프 슛을 던지게 했다. 이른바 센터를 슈터로 만들어 버리는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패스 능력까지 발군인 월드클래스 센터 세르비아 니콜라 요키치(덴버)의 경우에는 자유투 라인 꼭짓점과 좌우 연장 선상에서 스크리너 역할을 하면서 주도하는 지퍼 세트 플레이(Zipper Set Play)를 분석했다. 지퍼를 잠그듯 움직이는 패턴 공격이다. 자유투 라인 연장선 구역은 팔꿈치 지역(엘보우 에리어)이라고 불려 지퍼 엘보우 패턴으로도 통한다.
세계 최강 미국팀도 분석했다. 파리올림픽 결승 프랑스 전에서 미국 벤치가 4쿼터 막판 슈터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를 살리기 위해, 신장 203cm지만 발이 느린 프랑스 파워포워드 게르송 야부셀레(뉴욕)를 의도적으로 커리에게 1대1로 붙인 상황을 집중 분석했다. 르브론 제임스(LA)가 야부셀레를 앞에 두고 드리블할 때 커리가 스크린을 해 주는 척하다가 순간 야부셀레를 자신의 마크맨으로 유인해서 1대1로 3점 슛을 꽂았다. 커리가 공을 몰고 하프라인을 넘을 때는 반대로 르브론이 야부셀레를 끌고 살짝 스크린하는 척하고 빠지면서 다시 커리와 야부셀레의 1대1 상황을 만들었고, 커리의 3점포가 터졌다. 이른바 페이크 스크린, 고스트 스크린이라고 불리는 ‘유령 스크린’으로 수비수를 바꾸는 ‘스위치’ 상황을 만드는 패턴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2027년 카타르에서 열릴 예정인 농구 월드컵과 2028 LA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하겠다는 포석인 이 기술보고서가 다시 한 번 부럽다. 이 보고서를 ‘에너지’와 ‘동기 부여’의 필수조건으로 여기고 있다는 언급은 대한농구협회 홈페이지에서 경기 기록지 하나 찾기 힘든 우리 사정과 너무 대비된다.
안준호 감독의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이 젊고 대표팀 합류를 절실하게 원한 선수들을 이끌고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상황이라 이런 JBA의 실천이 더 아프게 와닿는다. 지난 일본과의 2차례 평가전에서 일본 벤치에 코치는 물론 스포츠 퍼포먼스 코치, 트레이너과 전력 분석 기술 스태프, 지원 코디네이터들이 대거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을 우리 선수들이 JBA 기술보고서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