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 DALL·E 3가 그린 사커 그림
“풋볼(football)이라고 해야 하나, 사커(soccer)라고 해야 하나.”
손흥민(33)은 7일 북미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 소속 구단 로스앤젤레스(LA) FC 입단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영국에서는 풋볼이라고 부르는 종목을 미국에서는 사커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풋볼은 ‘미식축구’를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매트 버즈비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자서전 표지. 사진 출처 영국 e베이 홈페이지
그런데 사실 사커라는 낱말도 영국에서 만든 겁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인 역시 사커라는 낱말을 흔히 썼습니다.
예를 들어 1945~196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령탑을 지낸 매트 버즈비(1909~1994) 감독이 1973년 펴낸 자서전 제목은 ‘사커 앳 더 톱: 마이 라이프 인 풋볼(Soccer at the Top: My Life in Football)’입니다.
또 역대 웨일스 최고 축구 선수로 평가받는 존 찰스(1931~2004)가 1957년 펴낸 자서전 제목도 ‘킹 오브 사커(King Of Soccer)’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홈페이지 캡처
원래 영국에서 ‘풋볼 = 축구 + 럭비’였습니다.
현재도 잉글랜드축구협회(FA·Football Association)와 잉글랜드럭비연맹(RFU·Rugby Football Union) 모두 풋볼이라는 낱말을 이름에 넣어두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 따르면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재학생 사이에는 낱말 끝에 ‘-er’를 붙이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런 유행 때문에 럭비는 ‘rugger’라고 불렀고 축구는 (association에서 따온) ‘assoccer’가 됐다가 ‘socker’ 또는 ‘soccer’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낱말 역시 이민자 사이에 섞여 자연스레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축구 황제’ 펠레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사진 출처 카터 센터 소셜미디어
그렇다면 영국에서 사커가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는 뭘까요?
일부 언어학자는 ‘축구 황제’ 펠레(1940~2022)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펠레는 1975년 북미프로축구리그(NASL·North American Soccer League) 소속 구단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했습니다.
그 뒤로 영국인 사이에 ‘사커는 미국식 (저질) 표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럭비는 ‘럭비 리그’와 ‘럭비 유니언’이 나뉜 상태라 ‘풋볼’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습니다.
사커루 로고. 호주축구협회 홈페이지
호주는 영연방 국가지만 자국 대표팀을 ‘사커루(Socceroos·사커+캥거루)’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축구를 사커라고 부릅니다.
대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럭비와 착각하기 쉬운 ‘호주식 축구(Australian Football)가 호주에서는 풋볼입니다.
그런데 정작 호주축구협회는 또 ‘풋볼 오스트레일리아(Football Australia)’입니다.
한국어 낱말 축구는 일본어 ‘슈큐(蹴球)’에서 유래했지만 정작 일본은 이제 사커를 일본식으로 적은 ‘삿카(サッカー)’를 더 많이 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