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찬규, 내국인 평균자책점 1위… ‘수다쟁이 에이스’의 반전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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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시즌에 11패 등 부진 겹쳐
FA 자격 얻었지만 신청도 못해
2023시즌 14승 올리며 극적 반등
‘시속 140km’ 올 시즌 커리어 하이… “무게잡는 것도 웃겨… 캐릭터 유지”

LG 임찬규는 22일까지 평균자책점 2.69로 국내 투수 중 1위를 기록 중이다. 시속 150km 넘는 공이 흔한 ‘구속 혁명’ 시대에 강속구 없이 버티는 임찬규는 일부 팬들이 ‘느림의 미학’ 유희관(전 두산)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대해 “그래도 희관이 형보다 (시속) 10km 빠르다”며 발끈했다. 뉴시스·뉴스1
LG 임찬규(33)는 일찌감치 실력보다는 ‘개그력’으로 리그 1위를 찍었다. 임찬규가 공 하나 안 던지고 손아섭(37·한화)과 세 시간 가까이 수다만 떤 유튜브 채널 영상은 조회수가 350만 뷰에 육박한다. 야구 선수가 나온 유튜브 영상 중 최고 조회수다.

이제 실력도 리그 1위다. 올 시즌 첫 경기부터 생애 첫 완봉승(3월 26일 한화전)을 거두더니 국내 투수 중 가장 좋은 평균자책점 2.69를 기록 중이다. 임찬규는 2022시즌까지만 해도 평균자책점 5.04로 11패를 당했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고도 신청도 못 했던 이유다. 하지만 2023시즌 들어 임찬규는 곧바로 3점대 평균자책점(3.42)에 14승을 올리며 반등했다.

당시 차명석 LG 단장은 임찬규의 활약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며 놀렸다. 해가 저물 때 잠시 밝아진다는 이 사자성어는 사람이 죽기 직전 잠시 원기를 찾는 상태를 칭한다. 그런데 정작 임찬규는 그때부터 올 시즌까지 3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했다. 구단 역사상 7명만 해낸 일이다.

LG 안방인 서울 잠실구장에서 최근 만난 임찬규는 “저는 그때(2023시즌)도 제 ‘저점(低點)’이라고 했었다. 단장님이 혹시라도 진심이었다면 보는 눈이 정확히 틀리셨다”라면서도 “팬분들이 FA 계약 잘됐다고 난리다. 단장님이 일을 잘하신 거니 야구장에서 자신 있게 다니셔도 된다”고 했다.

임찬규는 2023시즌을 마치고 LG와 4년 총액 50억 원에 FA 계약했다. ‘FA 대박’ 시대에 다른 구단과는 협상 창구를 열지도 않았다. 게다가 계약액의 거의 절반(24억 원)은 성적과 연동된 옵션이다. 구단이 처음 제시한 보장액은 더 높았지만 임찬규가 외려 보장액을 낮추며 옵션을 높였고 “다 받아 가겠다”라는 말을 지켰다.

프로야구 출범 이래 시속 150km 이상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가장 많아진 ‘구속 혁명’ 시대에 속구 평균 시속이 140km인 임찬규의 생태계 정복은 기이한 현상이다. 임찬규 역시 서울 휘문고 재학 시절에는 시속 150km 넘는 빠른 공을 던진 덕에 LG에서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런데 20대 내내 구단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던 유망주가 평균 구속을 시속 10km 가까이 잃은 서른세 살이 되어서야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 것이다.

임찬규는 “투수가 서른 넘어서까지 이런 경우는 저도 못 본 것 같다”며 “20대 때는 스피드를 포기할 수 없어서 더 집착했던 것도 있는데 오히려 조금만 일찍 깨달았으면 어땠을까 아쉽다”고 했다.

2023시즌을 준비하며 임찬규는 당시 읽던 책에 ‘이 공부를 하고 난 전과 후가 많이 바뀔 것 같다’고 적었다. 실제로 2011, 2022년 평균자책점 5.33으로 안정감이 없던 투수는 2023∼2025년 평균자책점 3.32로 5.4이닝을 소화하는 믿고 보는 투수가 됐다. 17일 SSG전에서는 목에 담 증세가 있었지만 6이닝 무실점으로 LG 국내 선발진 중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올렸다.

임찬규는 “2022시즌을 마치고 보니 한 게 너무 없더라. FA 신청도 못 하고 (당시 정규시즌 2위였던) 팀은 가을야구에서 (3위) 키움에 져 떨어지는 등 충격이었다”며 “완전히 실패한 시즌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간 운동을 안 한 건 아니니 정신적인 공부라도 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임찬규는 “구위가 좋아지거나 (공) 회전수가 올라간 게 아니다. 그렇다고 보더라인에만 던지는 투수도 아니다”라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트레이닝을 했다. ‘몸이 안 좋다?’ 그러면 거기서 끝이다. ‘몸이 안 좋으니 제구 안 되겠지, 지겠지’ 이런 불안을 자제하고 있다”고 했다.

신인 시절 이대호를 상대로 시속 150km 직구를 꽂아 넣고 세이브에 실패한 봉중근(45)을 격려해 ‘멘털센세’라 불렸던 임찬규가 ‘각 잡고’ 멘털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임찬규는 “그 나이치고는 당돌했던 것 정도였다. 성숙함이 진화됐다”고 했다.

‘고독한 에이스’는 익숙해도 ‘수다쟁이 에이스’는 어색하다. 임찬규는 “이런 선수가 없다는 건 좋은 거 아닌가. 개인적으로 SNS에 ‘다른 팀 팬인데 응원한다’고 메시지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야구 잘한다고 갑자기 무게 잡는 것도 웃기다. 해오던 게 있는데 계속 이런 캐릭터로 가겠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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