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유도 부흥 이끄는 ‘정성숙호’의 중심 최중량급 김하윤-이현지
파리올림픽 銅 ‘간판스타’ 김하윤
순발력-노련미로 ‘작은 키’ 극복… “LA올림픽 金딴뒤 경찰 되고싶어”
올 국대선발전 1위 ‘돌풍’ 이현지
국내서 가장 힘이 센 선수로 통해… “패기만 앞선 선수? 차차 증명할것”
한국 여자 유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갈 정성숙 감독(가운데)과 김하윤(왼쪽), 이현지가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진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절반을 먼저 빼앗겨도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한판으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게 유도다.”
8개월 전 한국 여자 유도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정성숙 감독(53)의 첫 숙제는 선수들의 뒷심을 키우는 것이었다. 정 감독은 선수 시절 레전드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그는 1995년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여자 61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두 대회 연속 동메달을 따냈다.
대표팀 지도자로 마주한 한국 여자 유도에선 예전의 끈질긴 느낌을 찾기 힘들었다. 선수들은 점수를 먼저 내주면 그대로 패배하곤 했다. 정 감독은 “선수들이 상대의 굳히기로 패배하는 일은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뒷심을 키우기 위해 기본기와 체력, 근력 훈련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의 노력은 성과로 나타났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달 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에서 금 3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한동안 ‘불모지’로 여겨졌던 여자 최중량급(78kg 초과급)에서도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간판 스타 김하윤(25)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가운데 고교생 신예 이현지(18·제주 남녕고)가 차세대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최중량급 정상에 오른 김하윤은 6월 헝가리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34년 만에 최중량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달 U대회에선 전 경기를 장기인 안다리 걸기로 승리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김하윤은 키가 178cm로 같은 체급 선수 중엔 작은 편이지만 순발력과 노련미로 상대를 제압한다. 정 감독은 “(김)하윤이는 34년 전 세계선수권 최중량급(당시 72kg 초과급) 금메달리스트인 문지윤(54·은퇴)과 체형, 순발력, 민첩성 등이 닮았다. 자세가 좋고 영리해 경기 운영 능력이 좋다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장 안에선 치열하게 상대와 겨루는 김하윤은 경기장을 벗어나면 ‘레고 마니아’가 된다. 선수촌 숙소엔 그가 만든 자동차, 오토바이 등 레고 모형이 가득하다. 김하윤은 “레고는 유도와 닮았다. 하나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하고, 도면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유도도 집중력을 바탕으로 기술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김하윤의 시선은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을 향하고 있다. 김하윤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LA 올림픽에서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석권)을 달성한 뒤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하윤의 옆에는 차세대 스타로 성장 중인 이현지가 있다. 2023년 한국 유도 사상 최연소(16세)로 태극마크를 단 이현지는 국내에서 가장 힘이 센 선수로 통한다. 김하윤도 “외국 선수보다 (이)현지가 힘이 더 세다”며 혀를 내두른다. 이현지는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 금메달을 수확한 데 이어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김하윤을 제치고 1위를 달성하며 초신성으로 떠올랐다.
공격적 유도를 추구하는 이현지는 장기인 허리후리기와 발목 받치기를 앞세워 ‘불도저’처럼 상대를 공략한다. 이현지는 “아직 패기만 앞선 선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고등학생의 패기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란 것을 차차 증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체격과 힘이 좋은 현지는 기술의 정확도 등을 보완하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여자 유도 최중량급의 간판 스타 김하윤(왼쪽)과 신예 이현지가 충북 진천선수촌 유도장에서 겨루기 자세를 취하며 활짝 웃고 있다. 과거 훈련 파트너였던 둘은 최중량급의 경쟁자이자 동반자로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진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여자 최중량급의 ‘투톱’인 김하윤과 이현지는 최고의 경쟁자이자 동반자다. 둘은 대회 시작 전에 ‘우리 서로 만나더라도 결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김하윤은 “혼이 날 때도 같이 혼나니 외롭지 않아서 좋다”면서 “훈련이 힘들 때면 현지가 ‘언니 힘내요. 마지막이야. 조금만 더 해보자’라고 말하며 힘을 북돋워 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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