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루 훔치던 대도 홈런까지 쓱싹… “다음은 우승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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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캡틴 박해민 반전의 야구인생
드래프트 두 번이나 선택 못받아… 육성선수로 입단, 최고 중견수로
타팀엔 ‘홈런 절도범’ 유쾌한 악명… 시즌 도루 1위, 7년만의 왕좌 노려

담장 타고올라 홈런 가로채기 박해민이 지난달 5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안방경기에서 외야 담장을 타고 올라가 두산 김재환(두산)의 타구를 낚아채자 관중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피자 업체 광고판 앞에서 만든 이 장면이 화제가 되자 해당 업체는 박해민에게 피자 60판을 선물하기도 했다. LG 트윈스 제공
17일 열린 2026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지원자 1261명 중 110명(8.7%)만 지명을 받았다.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아 좌절하고 있을 이들에게 어떤 말보다 강력한 위로가 되는 건 리그 최고 중견수로 활약 중인 박해민(35·LG)의 존재다. 박해민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했다.

LG 안방 서울 잠실구장에서 최근 만난 박해민은 “신일고 졸업반 때는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한양대 시절에는 대학리그에서 제일 잘 쳤으니 기대를 했다”면서 “그때는 독립 리그도 없어서 지명을 못 받으면 야구를 못 하게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문제는 수비였다. 이제 ‘리그를 평정한’ 중견수가 된 박해민은 “대학 시절만 해도 수비에는 관심도 없었다”며 “호수비는커녕 ‘만세’도 많이 불렀다”고 말했다. 줄곧 내야수로 뛰다 ‘입스 증후군’ 탓에 외야로 나갔고 4학년 때는 어깨까지 아파 송구도 잘 못 했다. 그 탓에 졸업반 때 대학리그 타격 1위(타율 0.429)에 오르고도 드래프트에서 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12년 삼성에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입단한 박해민은 두 시즌을 퓨처스리그(2군)에만 머물다 2014년부터 대수비, 대주자로 1군에서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선발 데뷔전은 그해 5월 9일 잠실 두산전이었다. 박해민은 “유희관 선수(39)가 두산 선발 투수인 날이었다. 왼손 투수니까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7번 타자로 (왼손 타자인) 내 이름이 불렸다. 그때부터 아무 소리도 안 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하루 못 치면 그다음 날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던 시절을 버티고 1군에서 살아남은 박해민은 이듬해 144경기에 전부 출장했다. 그해부터 4년 연속 도루왕(2015∼2018년)에 오른 박해민은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따온 ‘람보르미니’라는 애칭도 얻었다. 출고 10년이 지났지만 람보르미니는 감가상각이 없다. 지난달 프로야구 역대 다섯 번째로 통산 450도루를 기록한 박해민은 18일 현재 시즌 도루 1위(48개)로 7년 만의 도루왕 탈환도 노린다.

리그를 대표하는 ‘대도’ 박해민의 ‘장물’은 베이스만이 아니다. 안타까지 자주 훔치던 박해민은 올 시즌에는 홈런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박해민은 4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담장 밖까지 뻗은 채은성(35)의 타구를 낚아챘다. 이어 8월 5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125m 넘게 날아온 김재환(37)의 타구를 외야에 있는 피자 업체 광고판 앞에서 뛰어올라 잡아냈다. 이 타구를 포함해 이 광고판 앞에서 유독 여러 번 하이라이트 필름을 만든 박해민은 지난달 이 업체로부터 피자 60판을 선물 받기도 했다.

채은성에게 홈런을 처음 훔친 ‘초범’ 시절 “은성이 얼굴을 못 보겠어서 나도 모르게 (은성이를) 피하게 되더라. 은성이가 전날 고기를 사줘서 더 미안했다”던 박해민은 이제 얼굴도 두꺼워졌다. 박해민은 “최근에 재환이 형을 봤는데 ‘정 없다’고 놀리시길래 저도 ‘피자 잘 먹었다’고 서로 웃고 넘겼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 “예전부터 홈런이 될 타구를 잡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국내 구장은 대체로 담장이 높아서 잠실, 문학, 대전구장 정도에서만 시도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펜스 플레이나 점프만 생각했을 텐데 올해부터는 과감하게 담장을 타고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해민은 올 시즌 특히 한화전에서 ‘범죄 이력’이 많았다. 그 탓에 한화 팬들 사이에 대전 유명 빵집에 ‘박해민 출입 금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는 우스개가 돌기도 했다. 박해민은 “극찬이라고 생각해 기분 좋다”면서도 “무엇보다 수비에 대한 가치가 부각이 돼서 더 뿌듯하다. 수비 데이터도 더 세부적이고 정교하게 축적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홈런 타구 잡기’를 지운 박해민의 야구 인생 ‘버킷리스트’에는 뭐가 남아 있을까. 현재 팀 주장을 맡고 있는 박해민은 “많이 있는데 당장 하고 싶은 건 우승 주장”이라고 했다. LG의 2023년 한국시리즈 우승 때는 오지환(35)이 주장이었다.

“당시 지환이를 보면서 ‘우승 주장이라는 게 저렇게 빛나는 거구나’ 하고 느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프로야구#박해민#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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