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농구 ‘차세대 빅맨’을 꿈꾸는 고현곤이 전주남중 체육관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키 198cm, 몸무게 115kg인 고현곤은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이달 19일 프로농구 SK에 연고선수로 지명됐다. 전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고현곤(14·전주남중)은 느티나무를 닮았다. 일단 크고 굵다. 아직 2차 성징도 오지 않았지만 키 198cm, 몸무게 115kg이다. 윙스팬(두 팔을 옆으로 벌렸을 때 양손 끝 사이 길이)은 204cm에 달하고 신발은 340mm를 신는다. 마을 어귀를 지키는 느티나무처럼 고현곤은 농구 골대 밑을 지킨다.
최근 학교 체육관에서 만난 고현곤은 “210cm까지는 크고 싶다. 한국 농구의 ‘높이’를 책임지는 게 꿈”이라면서 “착실한 선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골밑에서 주어진 역할을 다해내는 센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좋은 ‘자원’을 학교 운동부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고현곤은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부, 육상부에 들어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난해에는 전주교육장배 초중학교육상경기대회 남중부 포환던지기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우승했다. 고현곤은 “대회 당일에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나갔는데 1등을 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현곤의 마음은 늘 주황색 농구공을 향해 있었다. 그저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틈이 날 때마다 유튜브로 한국프로농구와 미국프로농구(NBA) 영상을 돌려 봤다. 가장 좋아하는 게임도 ‘NBA 2K’ 시리즈다. 이렇게 농구를 사랑해도 농구부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다.
고현곤의 어머니 정지영 씨는 “현곤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80, 90점은 기본적으로 받던 아이였다”면서 “처음에는 농구부에 들어가는 걸 반대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매일같이 점심 식사도 거르고 농구만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고현곤은 부모님 허락을 받아 지난해 9월 학교를 옮긴 뒤 1년을 유급하고 본격적으로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현곤은 이로부터 불과 1년 남짓 흐른 19일 프로농구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SK에서 고현곤을 ‘연고선수’로 등록한 것. 연고선수는 유망주를 조기에 발굴해 신인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도 해당 팀에 바로 입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전희철 SK 감독은 “키가 크면 움직임이 둔한 경우가 많은데 현곤이는 유연성과 순발력까지 좋다. 자기 몸을 쓸 줄 안다는 뜻”이라면서 “농구 경력에 비해 기량도 좋다. 탐나는 자원인 건 분명하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친다. 고현곤은 “선수 생활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기본기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서 “야간과 주말에도 꼬박꼬박 훈련에 참여해 슛과 드리블 연습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고현곤의 목표는 NBA를 대표했던 ‘공룡 센터’ 샤킬 오닐(53·은퇴)과 SK의 외국인 선수 자밀 워니(31)를 섞어 놓은 선수가 되는 것이다. 고현곤은 “오닐의 파워풀한 포스트업과 자신 있게 내리꽂는 덩크슛을 배우고 싶다. 또 워니처럼 똑똑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감각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SK 구단은 워니와 발 사이즈가 같은 고현곤에게 340mm 사이즈의 농구화를 선물했다. 김학섭 전주남중 감독은 “인생 2회 차가 아니라 3회 차라고 말할 정도로 성숙하고 듬직해 기대가 많이 된다”며 고현곤을 대견하게 바라봤다.
강신재의 소설 ‘젊은 느티나무’는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고현곤이 농구를 더 사랑해도 되는 시간은 자기 덩치만큼 넉넉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키가 더 자랄수록 고현곤은 점점 더 느티나무를 닮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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