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CIA 요리학교(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양종집 교수가 18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보문원에서 사찰음식을 체험하기 위해 맷돌로 콩을 갈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비빔밥 시식 행사 같은 한식·사찰음식 홍보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일시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더 근본적인 방법을 고민해야죠.”
18일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만난 양종집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53·쉐프)는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식은 세계가 지향하는 ‘미래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며 “하지만 아쉽게도 한식·사찰음식의 세계화 노력은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미 뉴욕주에 본교가 있는 CIA는 프랑스 르코르동블루, 일본 츠치조리사전문학원과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곳. 아시아 음식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뉴욕 본교 교수진 120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19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개최한 ‘사찰음식 국제학술 심포지움’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양 교수는 “CIA 학사 집중교육 과정에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CIA는 준학사·학사·석사 과정으로 이뤄져 있고, 18개월의 준학사 과정을 마쳐야 3년 반의 학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이 학사 과정에는 각각 15주씩 배우는 유럽·동남아·아프리카·일본 등 4개의 집중교육 과정이 개설돼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조차 유럽 권역으로 묶어 가르치는데, 일식은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인 교육 과정이 있다.
미국 뉴욕 CIA 요리학교(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양종집 교수가 18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 보문원에서 계호 스님, CIA학장, 캠브리지대 트레이시 리우 교수, 에딘버러대학교 케한 딩 교수 등과 함께 맷돌로 콩을 갈며 사찰음식 체험을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양 교수는 “일식 집중교육 과정이 생긴 지는 4, 5년 정도 됐다”라며 “하지만 이미 10년 전부터 일본은 정부는 물론이고 관련 기관, 심지어 음식업체까지 CIA 내에 교육 과정을 만들기 위해 기부, 행사 후원, 홍보 등의 노력을 부단히 했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 내 간장 1위 업체인 기꼬만 등 관련 기업들은 회장과 이사진이 해마다 CIA를 찾아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스킨십을 갖는다고 한다.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과 음식 재료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또 일식 집중과정을 듣는 학생 전원을 일본에 초청해 일식은 물론이고 일본 문화 전반을 경험하고 맛보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비용은 전부 일본 측 부담이다. 이런 노력으로 개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식이 CIA 학사 과정에 포함됐으며, 일식 과정을 배우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한식·사찰음식 시식 행사를 열면, 먹어본 사람들은 모두 감탄할 겁니다. 그리고 ‘참 맛있네’하며 뿔뿔이 흩어지겠죠. 반면 세계적인 요리학교에 한국 음식 교육 과정을 열면, 이곳이 세계적인 한식 쉐프를 키워 내는 인큐베이터가 됩니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게 만드는 게 한식과 사찰음식의 진정한 세계화가 아니겠습니까.”
미국 뉴욕 CIA 요리학교(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양종집 교수가 18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사찰음식 체험을 마치고 장독대에 담겨 있는 장류들을 살펴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양 교수는 이어 “비빔밥이나 불고기, 된장찌개 같은 개별 음식을 홍보하는 차원을 넘어, 사찰음식을 포함한 한국의 ‘음식문화’ 전반을 알리려고 노력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음식에는 단순한 요리와 요리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 역사와 전통, 철학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맛있는데, 건강에도 좋고 나아가 환경·생태 친화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바람입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와 온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정신을 담고 있는 사찰음식과 한식은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사,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이런 추세에 가장 부합하는 음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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