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조선에선 청각장애인도 관직에 올랐다

  • 동아일보

코멘트

◇실학자의 눈으로 본 장애 이야기/정창권 지음/228쪽·1만7000원·사람의무늬


몇십 년 전만 해도 장님(시각장애인), 불구(지체장애인), 귀머거리(청각장애인) 등 장애인 비하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 복지, 대우도 열악했던 게 사실. 지금도 ‘장애인’이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불쌍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사람이 많은데 몇백 년 전에는 얼마나 더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과거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살았을 거라는 통념을 깬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편견 없이 그들과 일상을 공유했다. 장애를 가진 실학자들도 많았는데 다른 실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영조 때 좌참찬을 지낸 이덕수(1673∼1744)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에서 장애인에게는 노역, 균역, 잡역 등 모든 국역을 면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장애인보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북학파 실학자인 이덕무(1741∼1793)는 저서 ‘사소절(士小節)’에서 장애인 비하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혹 황급하고 노둔하여 보고 듣고 응대하고 일을 하고 걸음을 걷고 하는 데 있어 소략하고 민첩하지 못하더라도 소경이니, 귀머거리니, 벙어리니, 곰배팔이니, 절름발이니 하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4장 ‘이용후생파의 선진적인 장애 사상’에서)

사소절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작은 예절을 담은 수양서. 250년 전에 이미 자신과 자기 집안부터 장애인 비하 용어를 쓰지 않게 한 것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이렇게 넓고 다양했는지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장애인#시각장애인#청각장애인#지체장애인#실학자#조선 후기#장애인 인식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