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운동회 , 전북 고창 1976년 도서출판 윤진에서 사진가 김녕만의 <사진의 향기>를 출간했다. 이 책은 1970년대의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일상을 담은 흑백사진과 그 사진에 담긴 저자의 단상이 짝을 이루며 글과 사진의 상승작용을 보여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며 펼쳐지는 농촌의 풍경과 서울 변두리 서민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50년의 세월을 건너 따뜻하게 전해온다.
봄- 동물가족, 경기도 남양주 1975년 사계절 농부의 삶과 농촌을 떠나 서울에 편입된 서민들의 삶이 교차하고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로 교체되는 시점의 변화가 드러나며 ‘사라지는 것’과 ‘다가오는 것’의 대비가 펼쳐진다. 반세기 전 아직 가난을 벗지 못했던 시절의 단면이지만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두 사진가의 정겹고 구수하고 해학적인 시선과 맞물려 슬픔보다 그리움을 자아낸다.
여름- 멱감는 여인들. 전북 임실 1978년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직접 손으로 모를 심는 모내기 현장, 엄마는 바쁜 농사일에 젖을 먹일 시간조차 없어 누나가 업고 나온 아기에게 논두렁에 서서 젖을 먹이고, 뻥튀기 기계 옆에 올망졸망 모여든 아이들, 우시장에서 소 판 돈을 양말 속에 넣는 할아버지, 마당에서는 바람에 기저귀가 휘날리고 가을 운동회에서 어머니들은 고무신을 벗어 던지고 버선발로 달린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추억을 소환하며 사진에 감정이입이 일어난다. 그것은 이 책의 마지막 장 ‘공감’이란 제목 아래 이 책에 실린 51장 사진에 달린 감상자의 댓글이 증명해 준다. 저자의 글을 읽고 사진을 보며 저마다 꺼내 놓은 각기 다른 소감이 저자와 다른 경험과 추억을 추가하며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겨울- 우체부 전북 고창 1975년작가는 서문에서 “사람과 풍경은 사라졌어도 눈빛과 체취는 남아 오늘을 응시한다. 어쩌다 발견하는 책갈피 속 마른 꽃잎처럼 한순간 박제된 시간의 봉인을 해제하는 사진. 흘러간 순간은 더 이상 기쁨도 슬픔도 아닌 채 다시 돌아갈 수 없어 편안하고 그러므로 마음껏 그립다.”라고 말한다. 사실 아무리 고된 삶도 돌아보면 그립기 마련이다. 다시 돌이키거나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동결시킨 사진이 있어 잠시라도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사진의 마법으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다. 한 장의 사진이 단서가 되어 풀어내는 서사가 사람마다 다른 백 가지, 천 가지 이야기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봄- 농번기, 전북 고창1974년저자 김녕만(1949~ )은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 동아일보 사진기자와 작가로 활동하면서 “마음의 고향” “판문점과 DMZ” “시대의 기억” 등을 출간했고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2022년에는 ‘동강사진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