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구서 ‘또 다른 사회주의’를 펴낸 윤덕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통설과 달리 식민지 조선에도 공산주의 운동과는 다른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있었다”며 “오늘날 양극화가 심화한 가운데 이들의 사상과 활동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해방 뒤 중간파 세력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는 역사적 연원이 있어요.”
최근 연구서 ‘또 다른 사회주의―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역사비평사)을 펴낸 윤덕영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63)은 지난달 23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민주주의의 기원을 처음으로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30년을 근무한 윤 연구원은 2022년 퇴직 이후에도 일제강점기와 해방 뒤 좌우파 민족운동의 연속성을 규명하는 데 매진해 왔다.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이라고 하면 대개 박헌영(1900∼1955)이나 조선공산당 등 공산주의운동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윤 연구원에 따르면 1920년대 중후반부터 소련 및 코민테른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적지 않게 생겨났다. 상당수는 사회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고 한다. 윤 연구원은 “일제강점기엔 사회민주주의운동이 없었다는 게 기존 학계의 시각이었다”며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식민지라 의회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우파그룹은 없었지만 ‘좌익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1920년대 초에 시작된 물산장려운동 역시 민족주의 운동이란 통념과 달리 운동 초기엔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운동의 성격이 더 컸다고 한다. 윤 연구원은 “물산장려운동의 전국화를 주도한 건 조선청년회연합회와 배후의 상해파 고려공산당 국내부(국내 상해파)였는데, 주도 인물인 장덕수(1894∼1947)와 나경석(1890∼1959) 등이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낙후한 사회경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자본가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했으며, 합법 투쟁도 중시했다. 윤 연구원은 “그들은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경제적 제반 권리를 위한 투쟁, 민족 차별 철폐 등 민주주의 민족운동을 중시했다”며 “민족혁명이 이런 민주주의적 과제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해방 이후로도 이어졌다. 중국에서 민족유일당운동에 앞장섰던 원세훈(1887∼1959), 북풍파 사회주의그룹의 지도자인 김약수(1890∼1964), 사회주의 이론가로 유명했던 유진희(1893∼1949) 등이 사회민주주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민주당에 참여해 한민당이 진보적 사회경제 정책을 천명하는 데 일조했다.
앞서 윤 연구원은 초기 한민당이 보수적 지향에서 우파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합 정당이었으며, 결성 당시 한민당과 자매단체인 국민대회준비회의 부장급 이상 간부 36명 중 90% 이상이 민족운동 관련자라는 걸 실증한 바 있다. 윤 연구원은 “1946년 좌우합작운동을 계기로 한민당에서 탈당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민중동맹’ 등 해방 정국의 중간파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 연구원은 2023년 발간한 연구서 ‘세계와 식민지 조선의 민족운동’(혜안)에서는 민족운동을 ‘타협’과 ‘비타협’ 구도로 설명하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런 구분은 실증적으로도 맞지 않고, 민족운동에 대한 이해를 협소한 틀에 가둔다”며 “당대 세계의 사상사적 흐름 속에서 일본과 서구의 정치사상 및 운동의 전개를 동시적으로 비교 분석해야 비로소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해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민족운동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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