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시대가 배경인 탐정물 ‘설자은’ 시리즈 2권으로 돌아온 소설가 정세랑은 “2권이 나왔으니 이제 ‘진짜 시리즈’다”라며 “독자들이 영화감독처럼 장면을 그리면서 시간 여행하듯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시리즈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동일한 등장인물과 배경 혹은 유사한 패턴의 사건? 베스트셀러 작가 정세랑의 정의는 훨씬 명쾌했다.
“2권이 있느냐, 없느냐죠. 일단 2권이 나와야 ‘진짜’ 시리즈가 되는 거잖아요.”
최근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하나인 그가 지난달 역사 추리소설 ‘설자은’ 시리즈의 2권 ‘설자은, 불꽃을 쫓다’(문학동네)를 펴냈다. “10권 이상 가는 시리즈로 만들고 싶다”며 2023년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선보인 지 1년여 만이다.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시리즈. 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왼쪽)와 ‘설자은, 불꽃을 쫓다’. 문학동네 제공3일 만난 정 작가는 공언대로 시리즈 구색을 갖출 새 책을 내놓은 것에 “큰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책은 속편이지만 작가 말처럼 시리즈의 ‘진짜 시작’이 되는 셈이다.
정 작가는 판타지 소설로 등단한 뒤 드라마 시리즈의 원작인 ‘보건교사 안은영’, 모계적 상상력을 드러낸 ‘시선으로부터’ 등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오가며 작품마다 화제를 모았다. 미스터리 도전은 설자은 시리즈가 처음이다. 중세 수도원이 배경인 ‘캐드펠 수사 시리즈’ 같은 역사 추리물을 좋아해 써보고 싶었단다.
통일신라가 배경이 된 건 역사를 전공한 작가의 이력(고려대 역사교육과)과 연관이 깊다. 그는 “반만년의 역사 중 가장 관심 가는 게 통일신라 시대 20∼30년 정도 시기”라며 “(오늘날처럼) 분열과 화합이 화두였던 시기라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어떤 비극에도 안전한 심리적 거리”가 있는 ‘먼 과거’란 점도 매력을 느꼈다.
신라인들의 삶은 소설에서 호쾌하게 되살아난다. 급환으로 죽은 오빠 신분으로 살게 된 남장 여자 설자은. 당나라 유학을 마친 뒤 신문왕에게 집사부 대사로 발탁돼 나라를 뒤흔든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간다. 귀국길에 알게 된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과 콤비를 이룬다. 절제된 문장 속에 캐릭터와 결합된 ‘B급 코드’를 터뜨리는 정세랑표 유머는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
작가는 문헌과 취재 등 다방면의 고증을 더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등 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말갈인이나 백제 잔민의 서러움, 왕권 강화에 불만을 품은 세력의 반발 등이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는 “신문왕은 재위 기간(681∼692년)이 짧지만 국학 설립, 천도 시도 등 합리적인 시도와 성취가 많아 다룰 내용이 풍부하다”며 “경주박물관 신라천년서고의 소장 자료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설자은 시리즈는 특히 어린 독자가 많다고 한다. 정 작가는 “배송 온 책을 중학생 딸이 낚아채 가버렸단 후기를 읽었는데 작가로서 기쁜 장면이었다”며 “낯설 수도 있는 책을 깊이, 친숙히 읽어줘 감사하다”고 했다. 덕분에 책임감도 커졌다. “어린 독자가 많아지다 보니 폭력적이거나 부적절하진 않나 점검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벌써부터 “3권은 더 잘 쓰고 싶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류에 떠밀린 설자은의 상황이 다음 권에서 이어질 예정. 계획대로면 내년 이맘때쯤 나온다. 정 작가는 “현대물이 아니라 이야기 윤곽만 있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워 넣는 게 어렵다”면서도 “시리즈물의 매력은 써나갈 때마다 캐릭터와 친해지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리즈의 끝, 등장인물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연도를 역산해 보는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자은의 미래는 알아요. 모든 일을 겪고 아주 나이 든 모습을 그리고 싶거든요. 자은이 장수한다는 전제하에, 신문왕과 효소왕을 거쳐 성덕왕까진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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