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신축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백성이 부역에 동원됐던 1684년. 지역 양반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누군가 소수서원에 봉안된 ‘안향 초상’을 망가뜨린 뒤 길가에 버렸다. 여기서 초상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안향’은 양반 전체를 상징했다.
1710년 윤두서는 절친했던 심득경이 세상을 떠나자 슬퍼하며 기억을 되살려 그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을 받아 본 심득경의 가족은 윤두서의 솜씨에 놀라며 눈물 흘렸다.
초상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추적하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정조 어진 제작 과정 등과 관련해 여러 논문을 발표하는 등 초상화 속 사회사를 주로 분석해 왔다. 이번 책에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부터 왕이 하사하는 ‘신하 초상’, 각 당파나 학파의 정통성을 과시하는 ‘스승 초상’, 지방 수령과 백성들의 이해관계에서 생겨난 ‘목민관 초상’까지 조선시대 초상화 120점에 얽힌 이야기를 도판과 함께 정리했다.
조선시대에는 “터럭(털) 하나라도 더 많으면 곧 다른 사람이 된다”는 송나라 유학자 정이의 말이 자주 인용됐다. 당대 화가들이 주인공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김진여가 그린 ‘권상하 초상’은 서양식의 명암법이 잘 반영됐고, 진재해의 ‘유수 초상’은 피부색의 따뜻한 질감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 얼굴의 주름이나 잡티를 보정하는 것처럼 항상 사실적인 그림만을 지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자신의 성취를 자신감 있게 드러낸 ‘윤두서 초상’부터 86세 노모의 모습을 담은 ‘복천 오 부인 초상’,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화가가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록하려고 애썼던 ‘칠분전신첩’ 등에 담긴 인간적 이야기가 흥미롭다. 본문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초상화 14점은 부록으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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