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파리의 고서점에서 작가와 나눈 이야기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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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디렉터
아니 에르노-카를로 로벨리 등
집필 과정에 대한 인터뷰 선집
◇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애덤 바일스 엮음·정혜윤 옮김/384쪽·1만9800원·열린책들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김광석의 ‘나의 노래’.

소설가 한강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때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라고 밝히면서 다시금 주목받은 노래들이다.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고민을 하며 작품을 썼을지는 독자들에게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유명 작가들의 집필 뒷이야기를 궁금해했던 독자들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신간이 나왔다. 이 책은 세계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프랑스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문학 디렉터로 일하는 저자가 2012∼2022년 진행한 작가들과의 대담집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 퓰리처상 수상 작가 콜슨 화이트헤드,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등 20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1919년 개업해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서점에서 작가들은 집필 과정에 대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제 역시 문학과 자아, 시간과 삶, 여성과 예술, 계급과 정체성, 고독과 트라우마, 농담과 슬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19세기 미국 노예 탈출 비밀 조직을 다룬 장편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동시에 수상한 콜슨 화이트헤드는 소설에 담은 겹겹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큰 상을 받은 뒤 따라온 책임감과 부담감에 대해서도 꾸밈없이 들려준다. 그가 책을 쓸 때 어떤 음악을 즐겨 들었는지도 알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매우 냉정하고 무미건조하게 표현한 이유”에 대해 질문받자 “날마다 일어나는 일은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스무 번을 맞았는데, 그 스무 번째를 어떻게 더 극적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자체로 전달되는 것을 굳이 꾸밀 필요가 없어서였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서점은 작가들에게 무상으로 머물 곳을 제공하고, 각종 낭독회와 행사로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며 실질적인 유대를 제공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작가들은 들락거렸고 토론했으며, 밤에는 책장 사이에서 잠을 잤다.

창립자의 딸이자 현재 서점 대표인 실비아 휘트먼이 쓴 소개 글도 인상적이다. 그에 따르면 창립자 조지 휘트먼은 서점을 ‘평생 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야간 학교’라고 여겼다. 프랑스 정부의 강력한 비트족(기성 질서에 저항했던 문화) 척결 정책으로 1966∼1968년 서점이 잠시 문을 닫았을 때도 낭독, 강좌, 토론은 ‘파리 자유 대학’이란 이름으로 지속됐다. 서점 이름의 ‘컴퍼니’ 역시 회사가 아니라 동료나 친구라는 뜻에 가깝다. 책 읽는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보고 싶지 않을까.

이 서점에선 대담을 마치는 방식도 낭만적이다.

“노트르담 종소리가 이제 시간이 다 됐다고 알려 주네요. 곧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작가 대담#집필 뒷이야기#고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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