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필통 속 ‘지워지는 볼펜’을 기억하는가. 문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제품의 정식 명칭은 ‘파이롯트 프릭션’이다. 30년에 걸쳐 개발한 온도 변화 감지 잉크를 지우개 마찰열로 지우는 원리다. 만년필, 노트 등 총 81가지 문구가 가진 역사와 숨은 디테일, 디자인 철학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칼럼니스트 겸 방송작가인 자칭 ‘문구 덕후’가 썼다. 정윤희 지음·오후의서재·2만5000원
●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번역이란 직역 또는 의역을 넘어 행간을, 침묵을, 여백을 번역하는 일이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등 20여 년간 영미권 도서 100여 권을 한국어로 옮긴 번역가의 에세이집이다. 번역가로서 겪는 크고 작은 딜레마, 언어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 여성 번역이 권위적 텍스트에 내는 균열 등을 섬세한 필치로 풀어냈다. 홍한별 지음·위고·2만 원
● 누아르의 타자들
한국 누아르의 발자취를 들여다본 연구서. 1936년 ‘미몽’부터 2010년대 ‘신세계’ ‘아가씨’ ‘아수라’까지 누아르 영화 29편을 선별해 분석했다. 남성 드라마, 여성 드라마, 하드보일드 계열 등으로 분류한 점에 눈길이 간다. 오락영화로 치부되던 누아르가 군부독재 등 한국의 정치적 맥락과 겹치며 부조리로 뒤틀린 세상에 대한 ‘파국의 드라마’로 평가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강봉래 지음·출판공동체 편않·2만4000원
● AI블루
한국 인공지능(AI) 연구자와 개발자가 AI라는 기술이 촉발한 변화가 사람들 마음속에 일으킨 감정의 요동을 추적한 책이다. AI에 대한 반발과 냉소부터 지나친 환호의 목소리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다. AI 개발자, 디자이너, 웹툰 작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소설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160명에게 설문을 돌렸고 이 중 10여 명의 인물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조경숙, 한지윤 지음·코난북스·1만6000원
● 가시 그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1982년), 일제 치하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그린 ‘그리고 함성이 들렸다’(1986년) 등을 쓴 원로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짓밟힌 예술인 기생과 기생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액자소설 형식으로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부터 현대사까지 시공간을 다채롭게 넘나든다. 인물들의 개인적 상처와 시대적 아픔을 절묘하게 엮어낸 점이 흥미롭다. 윤정모 지음·교유서가·1만5500원
● 마흔에 읽는 융 심리학
스위스 취리히 칼 융 연구소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미국 심리학자가 융 심리학과 중년의 삶을 연관 지어 쉽게 풀어냈다.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는 융의 발언을 토대로 중년을 재조명한다.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과거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며 보다 완전한 자아로 나아가는 시기로 중년을 정의했다. 제임스 홀리스 지음·정명진 옮김·21세기북스·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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