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내게 툭 털어버릴 수 없는 것… 슬픔을 곁에 두고 떠난 이들 기억해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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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예소연
신간 소설 ‘영원에 빚을…’ 펴내
세월호-이태원 참사에 관한 얘기
“참사 기억하는 일엔 끝이 없어”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주목받은 소설가 예소연(33)이 최근 펴낸 장편소설 ‘영원에 빚을 져서’(현대문학·사진)에는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로 남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다. 하지만 소설은 참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참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3명의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선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설의 중심 인물인 ‘석이’는 2014년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던 도중에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는다. 캄보디아 친구가 과거 자기 나라에서도 300여 명이 압사한 사고가 있었다고 하자, 석이는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뭐 그런 죽음이 다 있어”라고 생각 없이 말을 뱉는다. 이후 석이는 이 ‘말빚’을 두고두고 후회하다 사과하기 위해 10년 만에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오른다.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예소연 작가.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그 개와 혁명’에서 각별한 부녀 관계를 그렸던 그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묻자 “언제나 제 소설을 읽고 피드백을 주셨다”고 떠올렸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예 작가는 “말빚에 대해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그 개와 혁명’(다산책방)을 쓰고 6개월 뒤에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수상 인터뷰에서 “이 소설을 쓰면서 마음이 참 단단해졌고, 그 덕분에 상주가 되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개인적 상실을 크게 겪고 난 뒤에서야 내가 했던 모든 행동, 특히 죽음에 대해 가벼이 여겼던 행동이 많이 힘들게 다가왔어요. 슬픔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 전에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더군요.”

그의 소설에선 등장인물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해피엔딩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동반자처럼 곁에 두며 단단해지는 편을 택한다. 예 작가는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나와 먼 사람의 죽음도 피부에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며 “죽음을 툭 털어버리고 극복하는 식의 서사는 내 소설에선 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경기 안성에서 고속도로 붕괴 사고가 있었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참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급하게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가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이런 중차대한 일에는 마무리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신간 소설의 제목에 ‘영원’이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누군가를 계속해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었다”며 “다음에는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좀 진득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문학상 대상#예소연#세월호#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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