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유리 수류탄-칼날 손잡이 휠체어… “주변의 일상이 정말 안전하고 당연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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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가 모나 하툼, 한국서 첫 개인전
“자고나면 무슨일 벌어지는 불확실성 직면”

파티션에 철조망을 단 작품 ‘디바이드(Divide)’ 뒤에 모나 하툼이 서 있다. 4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에서 만난 작가는 “내 얼굴 위에 철조망이 겹친 모습을 남기면 어떻겠느냐”고 먼저 제안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즐거운 나의 집은 항상 즐겁기만 할까?’

밥을 먹기 위해 온 식구가 모여 앉는 식탁 위 식기에 전선을 주렁주렁 연결해 전기를 통하게 한다. 치즈 강판을 커다랗게 만든 모양의 침대를 놓고, 무언가를 가려야 할 파티션에는 철조망을 달아 버린다.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비틀어 관객이 불안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현대 미술가 모나 하툼의 작품들 이야기다.

일상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것들의 배신. 1980년대부터 그가 보여준 ‘불편함’은 미술계를 사로잡았다. 영국 테이트모던과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뉴뮤지엄과 독일 카셀 도쿠멘타,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명되고 있다. 올해는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자코메티와 2인전을 앞둔 하툼이 갤러리 전시로 한국을 찾았다.

하툼은 개인전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정말 그런지 질문을 던져 보기 위해 일상의 사물을 활용한다”고 했다.

“집에서 쓰는 가구는 ‘몸’과 관련 있죠. 앉거나, 눕거나, 기대도록 만든 것이니, 작품에 몸을 표현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가구를 보고 저절로 자기 몸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툼의 작품 앞에 서면 관객은 상상에 잠긴다. 이번 전시에 나온 ‘무제(휠체어 II)’(1999년)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차갑고 딱딱한 휠체어다. 특히 누군가 잡고 밀어야 할 손잡이는 칼날처럼 만들었는데, 보는 순간 ‘저 손잡이를 잡으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은 한 사람이 다른 나라나 문화권에 갈 때 겪는 감정이기도 하다.

“늘 살던 곳을 떠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죠. 주변에 보이는 전부가 불확실하고, 이전엔 괜찮았던 것이 여기선 그렇지 않아요. 무언가를 마주할 때 ‘이게 나를 반길까? 아니면 거부할까?’라는 불안이 항상 있어요.”

유리로 만든 수류탄을 진열한 작품 ‘정물(의약품 캐비닛) VI’(2025년). 테오 크리스텔리스 촬영, 화이트큐브 제공
흥미로운 건 이런 불안한 감정이 수동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색색의 유리로 만든 수류탄이 있는 작품 ‘정물(의약품 캐비닛) VI’처럼, 가만히 있지만 함부로 만지면 폭발할 것 같은 폭력성이 있다. 하툼은 이런 요소들이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불길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며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정말로 항상 안정적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표면 너머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무언가가 무너지고, 오래된 가치관이 무너지며, 자고 일어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그건 이제 모든 세계인이 마주한 현실이 됐다. 팔레스타인인으로 레바논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을 갖고 있는 하툼은 “작품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해서 출발하지만 군더더기를 없애는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하툼은 1997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7차례 그룹전으로 국내에 작품을 선보였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그는 “인사동에서 마음에 드는 한지를 발견해 잔뜩 샀다”면서 “다른 골동품점에도 흥미로운 게 많았는데 문을 닫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일 말고 다른 건 한국에 궁금한 게 없었냐’고 묻자 그는 두 팔을 쫙 뻗더니 “다이소!”라며 웃었다. 한국의 일상 속 물건에서 하툼은 어떤 영감을 얻었을까. 답은 새 작품이 나올 때쯤 알아볼 수 있겠다. 4월 12일까지.

#현대 미술가#모나 하툼#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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