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마술사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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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세기 유럽의 마술사들/앤서니 그래프턴 지음·조행복 옮김/440쪽·2만8000원·책과함께


“부엌의 모든 냄비를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날려버릴 겁니다.”

1520년대 어느 날, 독일의 떠돌이 ‘요한 게오르크 파우스트’(1480∼1541)는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말과 달리 냄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1587년 출간작 ‘파우스트 책’은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성가신 손님’(파우스트)은 ‘거룩한 인간’에게 결코 해를 끼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스트는 당시 유럽에서 ‘마술사’로 불렸다. 평범한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각종 기행을 부렸다. 공중정원을 만들고,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기록도 있다. 그는 허풍쟁이 사기꾼이었을까, 진짜 마술사였을까.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자인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파우스트는 ‘마구스(Magus)’였다. 마구스는 15∼16세기 유럽에서 마술을 연구했던 지식인이다. 흔히 마술사라고 하면 초자연적인 힘을 쓰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저자는 마구스를 학자이자 연구자로 평가한다. 르네상스 시대 마구스들은 단순한 주술사가 아니라 세상의 숨겨진 원리를 탐구했던 선구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구스는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점성술, 물질의 변형을 연구하는 연금술과 같은 분야를 파고들면서 당시 과학 발전에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환영받지 못했다. 교회는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는 행위를 경계했다. 점성술과 연금술을 연구했던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1486∼1535)는 이단으로 몰려 객사할 정도로 박해받았다.

이 책은 15∼16세기 마술사들을 학술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책이지만 마술과 과학, 학문이 혼재된 시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나 장편소설 ‘백년의 고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마구스를 보고 놀랐던 중세 유럽인들의 모습은 인공지능(AI)이 가져올 변화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와 묘하게 닮아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마구스를 경계하던 중세 유럽인들과 얼마나 다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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