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스페인의 젊은 귀족 돈 주앙에겐 어떤 여성이든 혹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여성은 쾌락과 정복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정혼녀 엘비라까지 버린 채 순간의 열정만을 끊임없이 찾아 헤메던 돈 주앙은 한 기사의 딸을 유혹하는 바람에 결투를 벌이게 된다. 결투에 져서 목숨을 잃게 된 기사는 저주를 내린다. 그 저주는 바로 ‘진정한 사랑’이다.
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프랑스 뮤지컬 ‘돈 주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적인 공연이다. 2006년 국내 초연 뒤 19년 만에 열리는 프랑스어 오리지널 공연이기도 하다. 2009년 국내 라이센스 공연으로도 제작됐던 돈 주앙은 2004년 캐나다 퀘백에서 초연된 뒤 세계적으로 관객 100만여 명을 끌어모았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 유명 가수 겸 작곡가인 펠릭스 그레이가 음악과 극본을 맡았으며,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연출가 질 마외가 연출했다. 돈 주앙 역은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열연한 지안 마르코 스키아레띠, 마리아 역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서 활약한 레티시아 카레레가 맡았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돈 주앙은 호색한 또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 이탈리아 출신 인물로 알려진 ‘카사노바’와는 달리, 가상의 인물이다. 돈 주앙은 모차르트가 1787년 작곡한 오페라 ‘돈 조반니’를 비롯해 수 세기 동안 문학과 음악, 영화 등에 등장해 왔다.
이번 공연은 돈 주앙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개과천선(改過遷善)’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극 중반 이후 마리아의 약혼자 라파엘에 질투해 갈등하는 넘버가 특히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그레이는 1일 한국 취재진 인터뷰에서 “이전에 다뤘던 방식과 똑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라며 “돈 주앙이 지금껏 가져본 적 없는 진정한 열정과 정념을 그린다면 기존 작품과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어 공연이지만,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속 예술인 플라멩코 퍼포먼스가 핵심이다. 레이스가 달린 긴 치마를 입은 여성 무용수들의 관능적인 춤은 관객들을 스페인 세비야로 초대한다. 절도 있는 발 구르기와 딱 들어맞는 칼군무는 보는 이들에게도 쾌감을 준다. 기타, 캐스터네츠 등의 악기를 활용해 플라멩코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점도 매력적. 19년 전 공연에 비해 발광다이오드(LED) 세트와 조명 효과, 말 등의 구조물은 더욱 풍성해졌다.
다만 대사 없이 37곡의 노래로만 진행되는 ‘성스루(sung-through) 방식’인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멜로디에 녹아드는 직관적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사에 비해 함축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스토리가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서울 공연은 13일까지 진행되고, 이후 계명아트센터(4월 18~20일)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4월 25~27일)에서 추가 공연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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