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서 개인전 여는 英화가 나이절 쿡
“내 그림 달리 보려 바다에 비춰봐
스크린엔 못담는 촉각 담으려 노력… 불안함 모르는 AI는 쓸 일 없을 것”
‘바다거울’ 展서 신작 20여점 공개
8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나이절 쿡은 고전미술가들이 인물의 팔 동작, 머리카락 같은 요소를 이용해 그림에 불어넣는 생동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고 설명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5년 전 한국 첫 개인전에서 네온 빛깔의 강렬한 선이 돋보이는 그림을 선보였던 영국 화가 나이절 쿡. 최근 몇 년간 그는 방수 가방 속에 화구를 넣고 바닷가에 가거나, 4시간을 운전해 아이슬란드 폭포로 가서 드로잉을 했다. 그런 드로잉을 바탕으로 탄생한 부드러운 힘이 흐르는 회화 연작을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11일부터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신작 20여 점으로 구성된 개인전 ‘바다 거울(Sea Mirror)’을 여는 쿡을 8일 갤러리에서 만났다. 바다와 폭포 앞으로 간 이유에 대해 쿡은 “그림을 막 대하고 싶었다”며 “이를 통해 이전 작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설명했다.
나이절 쿡의 ‘그녀를 사랑하는 새의 마음(The Wild Bird-Hearts that Love Her·2025년)’. 페이스갤러리 제공“제가 가장 원했던 건 바닷물 속에서 헤엄을 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어요.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바닷물에 살짝 잠긴 채 물감이 씻겨 나가거나 종이에 모래나 먼지가 붙어도 신경 쓰지 않고 드로잉을 했죠. 바닷물에 붓을 담가 보기도 하고요. 집에서 자란 반려동물이 야생으로 나갔을 때의 한없는 연약함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화가들이 그림을 달리 보고 싶어 거울에 비춰 보았다고 하는데, 그런 화가들처럼 바다에 가서 내 그림을 달리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거울 대신 바다에 자기의 그림을 비춰 본다는 생각에서 ‘바다 거울’이라는 전시 제목이 나왔다.
전시장에서는 쿡이 스페인 포르멘테라섬에서 만든 종이 드로잉을 볼 수 있다. 이 그림들이 바닷가에서 즉흥적으로 그린 것이라면, 캔버스 작품은 실내 작업실에서 좀 더 정제된 형태로 완성했다. 쿡은 “이전 연작에서는 어느 정도 규칙을 뒀는데, 이번엔 쓰지 않던 흰색 물감도 넣어 보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 결과, 가로가 긴 파노라마 형태의 대형 회화가 탄생했다. 겹겹이 쌓인 부드러운 선과 상반되는 색채가 밀고 당기는 효과를 내면서 번개가 치고 구름이 흐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요즘 전시에 가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쁘지 않느냐”며 “스크린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촉각적인 감각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했다.
쿡이 일관되게 관심 갖는 건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오랜 과거의 화가들이 캔버스 위의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선택’했던 것과 그것이 만들어낸 ‘차이’를 흥미롭게 관찰한다고 했다. 대가들은 ‘탁월한 선택’을 통해 같은 대상을 그려도 그림 속에 생동감과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쿡은 ‘티치아노나 렘브란트가 20세기에 살아서 추상을 그렸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요즘 한국에서는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그림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해 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AI는 ‘불안함’을 모르잖아요. 불확실한 가운데 내 느낌을 믿고 나아가 보는 것. 모든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 가운데 아닐 수도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예술이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5년 전이라면 제가 여러 기법에 관심이 많았으니 AI도 실험해 봤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작업에 AI를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스크린으로 볼 수 없고, AI로 그릴 수 없는 ‘무언가’를 찾는 화가가 한국에서 관심 갖는 건 뭘까.
“어제 막 도착했는데, 도심 곳곳에 소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영국의 나무는 직선으로 곧은 형태가 많은데, 서울 나무는 다른 느낌이라 무언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나무와 바위가 있는 산에 가보고 싶습니다.” 5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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