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조지 G. 슈피로 지음·이혜경 옮김/448쪽·2만4000원·현암사
학급 회장 선거가 치러진다. 당신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고 끝내 한 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당신은 선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이는 틀렸다. 저자는 이를 ‘기권 투표의 역설’이라고 명명한다.
이유는 이렇다. 유권자 중 한 명의 표는 차이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으나, 다른 이들도 똑같이 생각한다면 이는 결과에도 분명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빙 선거로 꼽혔던 2000년 미국 대선은 물론이고 수많은 선거에서 기권표가 특정 후보자에게 행사됐을 경우 결과가 뒤집혔을 만한 사례는 숱하다. 기권표를 던진 이는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 책은 평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소한 일상 속 문제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명제들에 의문을 품고 ‘당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난해한 수학 문제들을 대중에게 쉽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수학자로 유명하다. 주요 외신에서 수학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신간에선 여러 종류의 역설이 탄생하는 과정과 논리를 설명한다. 수학, 사회과학, 철학, 언어, 정치, 종교 등을 아우르는 60가지의 역설을 장마다 설명, 해제, 부언으로 나눠 설명했다.
‘허구의 역설’ 사례도 흥미롭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눈물 흘렸을 때를 떠올려 보자. ‘소설, 드라마에 진심으로 감동한다’ ‘줄거리가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에만 진심으로 감동한다’는 각각의 명제를 분리해 놓고 보면, 어디에나 대체로 동의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지만 이 세 명제는 서로 충돌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명제가 참이라면 첫 번째 명제는 참일 수가 없다.
이에 학자들은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눈물 짓는 사람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설을 내놨다. 작품에 몰입하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사건을 사실로 믿는다는 ‘착각 가설’, 허구가 현실에서도 재현된다는 믿음 때문에 감동한다는 ‘상상력 가설’ 등이다.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판단을 곱씹게 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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