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과 파도까지 AI로”…일제강점기 제주 해녀의 이야기를 담은 ‘COZI’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1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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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인공지능) 단편 영화 ‘COZI’는 제주글로벌AI영상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 제주 해녀들은 제주도 바다를 떠나야만 했다. 이들은 군수용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데 동원됐고 낯선 일본 바다에서 물질을 이어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타지에서 여생을 보내기도 했다. 격동의 시대 속에서 이들에게 ‘바다’는 활기차게 물질하는 곳이 아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장소였다.

AI(인공지능) 단편 영화 ‘COZI(코지)’는 바로 이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넘실대는 파도, 세월의 흔적만큼 깊어진 해녀의 주름, 등장인물 목소리까지 전부 AI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뉴콘텐츠아카데미(NCA)의 김형준, 홍재의 감독이 연출한 COZI는 ‘제주글로벌AI영상공모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장려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95개국으로부터 출품된 1210편 작품들 사이에서 거둔 성과였다.

제주대학교 디자인과 출신인 두 감독은 본지 인터뷰에서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 중 널리 알려지지 않은 주제를 AI 기술로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제주 해녀인 김 감독의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해녀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영화는 1985년 일본에서 아픈 어머니를 간병하는 아들 ‘코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코지의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오게 된 제주 해녀다. 코지는 아버지를 죽게 만든 바다에서 매일같이 물질하는 어머니를 보며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더 이상 물질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여전히 바다를 찾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어머니에게 바다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이자 고향과의 연결고리임을 깨닫는다. 작품명 COZI에도 편안함과 안락함을 뜻하는 ‘Cozy(코지)’, 어머니가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던 장소인 곶(해안 돌출부)을 뜻하는 제주 방언 ‘코지’가 모두 투영돼 있다.

바다를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코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표현한 장면.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두 감독은 다양한 AI 기술로 실제 영상처럼 디테일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작품 속 배경인 제주도 푸른 바다, 1985년 일본의 도심 등을 AI 이미지 생성 모델 ‘미드저니(Midjourney)’로 구현했다. 개인 소장하던 제주 풍경 사진, 자료조사를 통해 수집한 1980년대 일본 도심 사진 등을 미드저니에 입력한 후 원하는 연출 포인트를 추가 요청해 1차 이미지를 생성했다. 포토샵으로 1차 이미지의 주변 배경 등 세부 요소를 최종 보완했고, 이를 AI 영상 제작 프로그램 ‘클링AI(Kling AI)’, ‘런웨이(RUNWAY)’에 저장해 영상화했다. 인물 표정에 생동감을 더하는 과정에서도 미드저니를 활용했다. 김 감독이 직접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다양한 표정을 촬영했고, 이를 새로운 정보 값으로 입력해 섬세한 표정을 연출했다.

김형준, 홍재의 감독은 AI 기술로 인물의 주름과 표정 등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더빙 작업에서는 음성 합성 프로그램 ‘일레븐 랩스(Eleven Labs)’의 힘을 빌렸다. 단 2명의 배우가 녹음한 음성만으로 등장인물 5명의 목소리를 완성했다. 녹음 파일을 일레븐 랩스에 입력해 중년 남성 의사, 할머니 등 각기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변환시킨 결과다. 제주도 사투리가 포함된 대사를 더빙할 땐 제주에 거주하는 지인의 목소리를 별도 녹음해서 활용했다. 두 감독은 “AI 영화들은 시각적인 효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작품 차별화를 위해 더빙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주력했다”며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꿔주는 TTS(Text-to-Speech) 기술만으로는 감정 표현에 한계가 있어서 최대한 실제 목소리를 기초 데이터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AI 기술 기반의 제작이 가능했던 건 뉴콘텐츠아카데미(NCA)에서 쌓은 경험 덕분이었다. 뉴콘텐츠아카데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사업으로 급변하는 콘텐츠 산업에 필요한 기술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기술 기반 콘텐츠 창작에 관련된 국내외 선도기업 및 교육기관 전문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실무형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김형준 감독(오른쪽)과 홍재의 감독(왼쪽)은 NCA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COZI를 연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두 감독은 NCA 활동을 통해 AI 영화 제작 과정을 이해하고 가상 요소를 실체화하는 가상 시각화 기술을 체득했다. 이들은 “원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구현할 수 있는 AI 영화의 특성상 통상적인 제작 과정처럼 촬영 전 준비 단계인 프리 프로덕션, 실제 제작이 진행되는 프로덕션, 최종 편집하는 포스트 프로덕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며 “NCA 과정을 수강하며 이런 제작 구조를 깊이 이해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문가 초청 특강도 큰 도움이 됐다. 이번 교육과정에서는 대한민국 제1회 국제 AI영화제에서 ‘마테오’로 대상을 수상한 양익준 감독이 강연을 맡았다. 질의응답을 통해 인물 표정을 완성하기 어려울 때 딥페이크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 등 여러 실질적인 조언을 얻었다.

두 감독은 NCA의 또 다른 강점으로 AI 콘텐츠 제작 장비를 자유롭게 실습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외부에서는 스튜디오 이용료를 지불해야만 관련 장비를 사용할 수 있지만, NCA에서는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다. 전문 스태프의 맞춤형 교육까지 더해져 장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두 감독은 앞으로도 꾸준히 AI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 작업 생산성과 작품 완성도를 높이려면 AI 기술 활용이 필수적”이라며 “뉴콘텐츠아카데미(NCA)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새로운 창작물 제작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편 영화#COZI#제주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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